권력의 속성을 제대로 알아보기
이 책에는 북미지역의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소개되는데, 연구 결과가 꽤나 흥미롭다.
사람들과 가장 활발하게 소통하는 쪽은 주로 선임 변호사들이었다. 반대로 고객 확보나 인맥관리를 목적으로 한 소통 행위에 가장 큰 거부감을 느끼는 쪽은 새내기 변호사들이었다. 이들은 사내에서 가장 힘이 약해서 누구보다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했지만, 자신들은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P63)
새내기 변호사들은 필요한 자원을 찾아 나서는 데조차 상당한 거리낌을 느낀다. 반면 선임 변호사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맥관리를 하면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왜? 난 가진 게 많으니까.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혜택을 줄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힘은 내가 선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한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힘 혹은 권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어떤 사람들은 힘을 더럽다고 인식하고, 어떤 사람들은 적극 이용해서 더 많은 힘을 가지는 걸까? 우리는 힘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 권력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힘은 설득이나 강요를 통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능력을 뜻한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상대방이 가치 있게 여기는 자원에 대한 접근 권한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자원을 통제하고 있으면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힘이란 사람들 간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한다. 서로 얼마나 상대방이 원하는 자원을 통제하고 있는지, 그 자원이 얼마큼 대체 가능한지에 따라 힘의 균형이 움직이게 된다.
힘을 갖고 싶다면 타인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길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욕구가 있다고 한다.
안전
자존감
안전 욕구는 우리가 처한 환경의 불안정성에서 기인한다. 위험하고 예측 불가한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존본능이다. 신체적인 위협은 물론 생계를 위협하는 것도 아주 치명적이다. 당신이 남을 해고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는 사실은 아주 효과적인 힘의 원천이 된다.
자존감 욕구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나는 먼지처럼 하찮은 존재라는 인식에서 비롯하였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이 이 세상에 말없이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알고자 존재의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나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또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가치를 주는지에 대한 집착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하려는 욕구와 직결된다.
그럼 안전과 자존감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인간의 기본적인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는 6가지 자원이 있다. 바로 돈, 지위, 소속감, 성취감, 자율성, 도덕성이다. 사람들은 이 6가지 자원을 원한다. 만약 상대방이 현시점에서 가장 가치를 두는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첫 번째, 자기 집중적 태도를 보인다. 힘이 주는 안락함에 도취되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지는 건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큰 권력을 쥐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게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권력을 가지면 자기만 생각하고 남한테 관심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오만하다. 권력을 쥐면 자신감이 넘쳐 오만한 태도를 보이기 쉽다고 한다.
이런 두 가지 특징 때문에 “잘 나가더니 사람이 변했어, 초심을 잃었네”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면 권력이 주는 이와 같은 부작용을 어떻게 해독할 수 있을까? 책에서 제시한 해법은 공감과 겸손이다.
자기 집중 -> 타인에 공감
오만 -> 겸손
권력을 얻은 사람은 스스로 타인에게 공감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감 능력을 키움으로써 자기 집중적 태도를 억제하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수 있다.
다음은 ‘어떻게 겸손해질 수 있을까’하는 문제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 영원할 것 같던 권력도 하루아침에 잃을 수 있다. 다 부질없다는 마인드를 가지면 겸손해지지 않을까? 흠.
여기까지 개인의 차원에서 권력의 속성에 대해 알아봤고 이제는 사회 전반적 차원에서 권력에 대해 살펴보겠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권력 계층 자체가 현상 유지를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는 좀 의아할 수 있다. 바로 사회약자층이 권력계층의 권력 유지에 이바지하는 현상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때는, 사실 이것은 정치판에서 흔히 목격하는 현상이다. 가난한 사람이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부자를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학력이 높고 돈 많은 후보를 선호하는 것 같다. 심지어 무턱대고 아주 권위적인 후보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마치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를 통해 대리만족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회약자층의 삶은 온갖 불확실성과 결핍으로 가득해 안전감이 없다. 이는 질서와 안정성, 예측 가능성 추구로 이어진다. 세상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보고, 힘의 분배를 타당한 것으로 보는 데서 위안을 느낀다. 그러므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상황에서도 기존의 시스템을 합리화,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다.
안전감이 인간의 제일 기본적인 욕구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의 해석이 선뜻 이해가 간다.
역사는 우리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남용되는 것을 막으려면 구조적 한계를 설정해 두어야 한다.
첫째, 권력을 여럿이 공유한다.
둘째, 권력과 걸맞은 책임을 지게 한다.
집단행동은 힘없는 자들이 권력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입증됐다. 노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렇다면 집단행동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서는 선동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한다. 집단행동이 성공하려면 세 가지 역할이 필요하다.
선동가
혁신가
통합가
선동가는 말 그대로 불난 민심에 부채질하며 선동하는 사람이다. 혁신가는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대안이 없는 혁명은 방향을 잃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는 꼭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통합가는 여러 당사자간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이다. 같이 싸우던 동지들끼리 나중에 갈라서는 일이 없도록 잘 조율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통합가는 꼭 필요한 역할이다.
여기까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권력의 속성을 알아보았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