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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Nov 28. 2021

매력쩌는 이 남자, 누구얏?!

존 메이너드 케인스 1


양성애자? 경제학자? 사상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어떤 특정 인물에 빠질 때가 있다. 이 사람 인생 폼나는데? 맘에 든다~ 하는 사람. 능력이나 성품에 매료되는 경우가 있고 또 삶 자체가 드라마틱해서 좋아할 수도 있다. 오랜만에, 행운스럽게, 나도 이런 사람을 만난 것 같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개인의 삶과 거대한 역사가 결합되어 가슴이 웅장해지는 책이다. 지난 한 달간 책을 읽으면서 그 주인공에게 푹 빠졌다. 경제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사람, 존 메이너드 케인스, 자유분방하고 엘리트적인 그의 사상은 나에게 굉장한 영감을 주었다.




내가 빛나는 곳에 있어야 해


나는 케인스 경제학은 아는데 그의 삶에 대해서는 몰랐었다. 이번 책을 읽고서야 케인스란 사람이 정말 멋진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가 맘에 들었냐고? 첫 번째는, 그가 아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저번에 아인슈타인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는데, 나는 자유롭게 사는 인물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케인스는 38세까지 동성애자로 살다가 미모의 러시아 발레리나를 만나면서 결혼까지 한다. 그의 한 무리 친구들도 양성애자였다. 블룸즈버리라고 불리는 이 사교클럽 회원들은 예술과 문화를 사랑했으며 성적인 자유로움을 추구했다. 그들은 서로서로 연인관계를 유지하며 개방적인 결혼생활을 즐겼다. 이게 무슨 난장판이냐고ㅋㅋ. 사실 젊은 케인스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성인들 모임에서 지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빛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케인스는 오래전부터 사교 모임에서 동성애를 주창하며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이런 성적 취향은 그의 커리어에, 뭐 지장을 준 것 같지는 않다. 이래서 사람은 본업을 잘하고 봐야 함. 내가 그를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금이 뭐길래


케인스는 케임브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학부생 때 꿈은 재무부 관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졸업 후 인도사무소라는 정부기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1908년 케임브리지에 돌아와서 경제학 강의를 맡았다. 1913년에는 첫 책을 출간했는데, 내용은 인도 내 일상적 상거래를 위해서  루피화를 금으로 바꾸게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금은 국제무역에만 의미 있다는 것이 케인스의 생각이었다.


유서 깊은 대학에서의 평온한 생활은 1914년 1차 대전이 터지면서 끝나게 된다. 전쟁이 나자 주가가 폭락했고, 유럽의 각 도시에서 사람들이 금을 인출하며 금융 시스템이 위기에 처했다. 영국은 주식시장이 폐쇄되고 은행은 휴무에 들어간 상태가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큰 문제는 영란은행의 금 보유량이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재무부는 금융계 대가들을 초청해서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한 재무부 직원이 케인스를 런던으로 부르게 된다. 그는 예전에 케인스와 몇 달간 함께 일한 적 있었는데 바로 그때 케인스의 지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아니 얼마나 똑똑한 인상을 남겼으면 이런 긴급상황에 무명의 인물을 불러서 의견을 구한단 말인가.. 역시 스쳐가는 인연은 소중하다. 나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노력해야겠다. 혹시 나를 불러줄지 누가 알아..





케인스는 런던으로 달려갔다. 런던에서 은행업계 대가들이 내놓은 방안은, 외국인들에게 금 지급을 중단하고 영국에 금을 비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케인스는 그 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외국에는 금을 달라는대로 다 바꿔주고, 국내는 돈을 찍어내면 된다는 것. 헉!


케인스의 생각은 이러했다. 지금 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영국의 신뢰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금은 위기의 순간에 써먹지 않으면 평시에 모아둬 봤자 무용지물이다. (멋진 말!) 지금이 바로 금을 쓸 시기다. 다른 나라들은 금을 안 바꿔주는데 영국만 약속대로 금을 바꿔줌으로써 영국의 위상을 굳건히 할 수 있다. 반면 국내의 금 수요는 중요치 않다. 일반인들이 금을 바꾸려면 직접 영란은행 본점에 찾아가라고 규정하면 된다. (귀찮아서 금을 안 바꾸게 하려는 속셈) 즉, 국내는 금을 바꿔주지 말고 외국인들에게만 바꿔주자. 대신 국내에서는 새로운 지폐를 찍어내면 된다.


재무부 장관 로이드 조지는 케인스의 방안을 채택했다. 결과는, 다행히 사람들은 새 지폐를 받아들였고 물가 폭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위기를 넘긴 재무부는 케인스의 능력을 인정해 그를 고용하기로 한다. 이렇게 재무부에 취직을 하다니.. 너무 드라마틱한데ㅋㅋ. 아무튼 이렇게 되어 케인스는 1차 대전 기간에 재무부에서 일을 하며 보내게 됐다.


(전쟁 기간에 유럽 대국들은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돈을 마구 찍어대며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영국도 이런 국가들에게 금 지급을 금지했는데, 사실상 금본위제를 포기한 것이 된다.)






친구란 무엇인가


친구가 잘 나가면 배가 아프기 마련이다. 블룸즈버리 멤버들은 시기질투 속에서 케인스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전쟁에서 돈 관리하는 역할이나 하고 자빠졌다고. 추악하다는 거다. 웃기는 건, 처음에는 케인스에게 잘난 체하지 말라고 비난 편지를 보내다가 나중에는 차차 돈을 빌려달라고 함. 부모님으로 받던 생활비가 끊겨서 1파운드씩 빌려달라고 한 게 20파운드까지 누적되었다고 한다. 편지 내용을 보면 참 가관이다.



“던컨과 나는 자네 집에서 편하게 지냈다네...

자네의 후한  배려가 고마울 뿐이네...

참, 자네 집에 있던 위스키 한 통은 우리가 비웠다네.”


질투는 나는데, 도움은 받아야겠고 ㅜㅜ 친구들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전쟁에 군인이 모자라자 영국은 남자들을 징집하기 시작했는데, 케인스는 인맥을 동원해 어떻게든 친구들이 위험한 전장에 나가지 않도록 힘을 다했다. (이런 친구 또 어디 있을까..) 사실 케인스 역시 블룸즈버리 친구들의 예술적인 면모를 질투했다고 한다. 심지어 친구의 연인을 빼앗는 고약한 버릇도 있었다. 그런 행위로 능력을 과시하려고 했던 것.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나 보다. 이렇게 블룸즈버리 멤버들은 서로 좋아하면서 또 시기질투하는 묘한 그룹이었다.





빚을 면제해줘요 미국!


1차 대전이 끝나고 1919년 파리 평화회의가 열렸다. 이때 미국 윌슨 대통령의 인기가 엄청났다고 한다. 파리 인구가 100만인데 윌슨을 보려고 200만이 거리에 몰려들었으니. 케인스도 영국 대표단에 포함되어 프랑스로 갔다.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는 케인스를 포함한 경제 전문가들에게 독일이 지불 가능한 정확한 배상금 액수를 계산해오라고 했다. 이때 케인스가 계산한 금액은 20억 파운드, 그것도 절반은 먼저 지급하고 나머지는 향후 30년에 걸쳐서 내는 거였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은 24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를 계산해냈다. (그냥 돈을 많이 받고 싶은 거였음.) 유럽 나라들은 모두 독일로부터 큰 액수의 배상금을 받아내려고 악을 썼다. 특히 프랑스는 케인스를 초청하여 피해 현장을 둘러보게 하며 참상의 규모를 절실히 느끼게 했다. 봐봐, 우리가 이렇게 피해를 입었는데 배상금 고만큼 받고 되겠어, 안 되겠어, 엉?





케인스는 전후 유럽의 경제 회복을 위해서 각국이 갖고 있는 채무는 최대한 면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전쟁 기간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빌렸다.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은 영국에 빚을 지고 있는 상태였다. 전쟁의 피해로 유럽 각국은 부채를 상환할 형편이 안된다. 어차피 상환능력이 없으니, 케인스는 미국이 전쟁 부채를 모두 탕감해주면 영국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헉, 어떻게 이런 발상을. 대단하다!


케인스는 원래 윌슨 대통령을 좋아했다. 그는 윌슨 대통령이라면 받아들일 줄 알았다. 전쟁에서 유럽 국가들이 미국보다 훨씬 많은 피를 흘렸으니까, 미국은 경제적으로 약간 손해를 봐도 괜찮겠지.. 했는데, 윌슨은 분노했다. 미국은 이미 유럽을 위해 자국 병사들의 목숨까지도 바친 상황인데, 이제 뭐 빌린 돈까지 안 갚으려고 하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싫어요?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케인스는 또 다른 경제적 방침을 마련했다.


독일은 신규 채권을 발행한다. (경제적으로 제일 여유 있는 미국인들이 많이 사야 할 것이다.)

독일은 그 돈으로 영국과 프랑스에게 전쟁 배상금을 지불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그 돈으로 자국 경제를 재건하는데 쓰고 또 미국에 진 빚을 갚는다.


기가 막힌 메커니즘이었다, 당연히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케인스는 파리에서 제대로 되는 게 없자 좌절감과 분노에 휩싸여 사표를 냈다. 한때 윌슨을 좋게 봤던 케인스는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윌슨은 지상 최대의 사기꾼이다, 멍청이다 하면서 욕을 했다.


그는 이런 분노를 눌러 담아 <평화의 경제적 결과>라는 책을 썼다. 책은 순식간에 완판되었고 영국, 프랑스, 미국 대통령에 대한 거침없는 인신공격으로 유명세를 타게 됐다. 사실 초안은 인신공격이 더 심했는데, 부모님과 친구들이 말려서 좀 삭제되기도 했다. 대략 뭐 ‘눈과 귀가 먼 돈키호테’, ‘염소발이 달린 돼지’ 같은 표현을 썼다고 한다. 생생한 인물 묘사는 친구이자 소설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맞아여, 그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 이 책은 자비로 출판했기에 케인스는 엄청난 돈을 벌었다. 놀라운 것은 이 책이 미국에서도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공화당이 유럽 경제에 관심도 없으면서 대통령을 공격하는 내용들만 신나게 퍼 날랐다고 함.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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