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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Nov 28. 2021

돈과 인기를 다 가진 삶

존 메이너드 케인스 2




철학은 아닌가 봐


1921년 케인스는 지성인으로서의 그의 경력에 최고봉이 될 것이라며 야심 차게 준비한 <확률론>을 발표한다. 철학책인지 뭔지 아무튼 뭐 확률에 관한 내용? ㅎㅎ. 책에서 케인스는 작지만 달성 가능한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성이 아주 작은 거대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 책이 필생의 역작이 될 거라고 확신? 아니, 기대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듬해 그의 친구 비트겐슈타인의 책 <논리철학논고>가 나왔는데 이 책은 영어권 국가 전체에 혁명을 일으켰다.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서 1차 대전 때 군대에 자원했고 결국 연합국의 포로로 잡혀서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다. 전쟁 중에 그는 기가 막히는 철학책 하나를 썼는데 책 원고가 수용소에 있었다. 근데 바로 케인스가 재무부에서 그만두기 전 인맥을 통해 그 원고를 빼냈다고 한다. 원고는 영국으로 반입되어 러셀에게 감. (러셀 이 분 또한 유명하심.) 책 출간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으나 이로 인해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케인스가 아닌 비트겐슈타인이 되었다는.. 확률론은 묻혔고 케인스가 철학 쪽으로 유명세를 타기는 물 건너갔다. 씁쓸함을 뒤로하고 케인스는 금융 전문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면서 유명세를 쌓게 된다.








어느덧 부자가 되어있었다


케인스는 오래전부터 주식을 해왔는데 점점 도박도 하고 통화가치에 베팅하는 투기도 즐겼다. 경제학자가 역시 투자도 잘해야지 ㅎㅎ 투자의 달인이 된 케인스는 친구, 가족들과 공동 투자를 하면서 돈 관리를 해주었고 손해가 나면 자기돈으로 메우려 노력했다. 하 정말 이런 친구 어디 없나? 너무 부럽다. 돈을 벌어다주고, 손해 나면 자기돈으로 메우고.. 주변 사람들이 복 터진 거지.       


돈이 많으면 과시를 하기 마련이다. 케인스는 말을 타고 여우사냥을 나가고, 파티를 열고, 발레 공연을 즐기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러시아 출신 미모의 발레리나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이름은 리디아, 발레장은 그녀를 보러 온 사람들로 빽빽하고 인형까지 만들어져 팔릴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리디아는 지식인들을 동경하고 자신도 그렇게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녀는 케인스가 쓰는 경제 정책 기사에 관심이 많았고 케인스의 유명세도 사랑했다. 하지만 버지니아를 비롯한 블룸즈버리 멤버들은 이 젊은 예술가에게 위협을 느꼈다. 리디아는 예술가로서 돈과 명예를 가졌고 그들보다 10살 정도 어리다. 거기다가 그룹에서 가장 유명한 멤버이자 돈줄인 케인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예쁜 리디아를 험담하고 경멸하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남자들이 리디아를 진지하게 여기지는 않아도 다들 그녀와 키스는 하고 싶어 한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케인스는 몇 년 후 리디아와 결혼을 함.)     









금이 답일까?


대중 저널리스트로 잘 나가던 케인스는 1922년에 어마어마한 돈을 받고 제노바에서 열린 회의를 취재하러 나섰다. 당시 유럽의 문제점을 요약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유럽 대국들은 금본위제를 실시했다. 금본위제에서 각 나라 화폐는 일정 량의 금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정부는 지맘대로 돈을 찍어낼 수 없고, 각 나라 화폐의 교환비율은 금을 통해 고정된다. (영국에서 1파운드로 금 1g 바꿀 수 있고 미국에서는 1달러로 금 0.5g 바꿔준다고 가정하면, 1파운드=금 1g=2달러. 그러면 환율은 1파운드=2달러로 정해진다.) 때문에 이 시기 환율은 안정적이었고 자유무역이 활발히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다 1차 대전이 터지면서 각국 정부는 돈을 마구 찍어냈고 금본위제는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전후 곳곳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국제 시장에서 환율은 요동쳤다. 1920년부터는 각 국가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물가를 내리치기에 집중했는데, 여기에는 낮은 물가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미국이 물가를 내리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 금이 미국으로 흘러들어 갔고, 다른 나라들도 금고가 바닥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로 금리를 올렸다. 영국의 물가는 반토막이 나고 실업률이 높은 사태가 장기간 이어지는 중. 즉 국제적으로는 환율이 불안정했고 국내에서는 물가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법은 무엇일까? 금본위제로 돌아가야 할까? 여론은 금본위제를 외치고 있었다. 화폐와 금을 연결시켜야 정부가 돈을 마구 찍는 것을 방지하고, 환율 안정을 되찾아 자유무역을 번창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제노바 회의에서는 유럽 각국이 하루빨리 금본위제로 복귀해야 한다는 합의가 달성되었다.


하지만 케인스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국제 환율 안정보다 국내 물가 안정이 먼저다’라고 생각했다. 먼저 물가를 안정시키고 그다음에 환율을 조정해야 한다. 물가가 심하게 오르고 내리고 하면 경제가 바닥으로 나가떨어진다고요..







물가가 뭐길래


고전적인 경제 이론에 의하면 영국이 겪고 있는 디플레이션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가가 하락하면 노동자들의 임금도 하락하고 생활비가 하락하기에 생활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은 디플레이션을 겪으며 실업률이 높아졌고 파업 위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현실세계에서 임금은 물가 하락에 따라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파업과 실업이란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내려가는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은 채무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인플레이션이 폭주하는 기간에는 채권자가 손해를 보게 된다. (돈 100만 원을 빌려주고 1년 후에 110만을 받기로 했다. 근데 1년 후 물가가 폭등하여 100만 원짜리 샤넬 가방이 200만이 되었다. 이제 110만으로 샤넬 가방을 살 수 없다. 돈의 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채권자는 억울하다.) 반대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기간에는 채권자가 이득을 보고 채무자에게는 불리한 상황이 된다.


이렇게 물가가 불안정하면 내가 받는 임금,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줄 돈, 내국인이 외국인에게서 받는 돈의 가치에 살벌한(?)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케인스는 사회를  안정시키려면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가 안정 = 통화 가치의 안정) 따라서 케인스는 중앙은행의 기존 운영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영란은행의 주요 업무는 금고 관리였다. 즉 과도한 수입이나 수출 부족으로 금이 바닥나지 않도록 금리를 조정하는 것. 하지만 이제는 물가관리를 위해 금리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 케인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환율에 대해서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유사시 자국 통화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함. 하지만 아쉽게도 미국이 프랑스와의 불화로 제노바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다. 달러를 빼고 국제 통화 시스템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에, 케인스의 생각들은 실현되지 못했다.





케인스는 이런 생각들을 모아서 <케인스의 화폐 통화 개혁법안>이라는 책을 냈는데, 런던의 지도층과 금융계에 큰 충격을 줬다. 정부가 자국의 통화가치를 재평가하도록 허용한다면 (파운드에 부가되는 금의 일정 비율을 즉흥적으로 변경한다면) 사실상 금본위제를 폐지하라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각국의 중앙은행에서는 회의가 이어졌고 화이트홀에서는 케인스를 초청하고..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서있었다.       


케인스는 신문사 하나를 직접 인수하여 자신의 이론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데 나섰다. 역시  많으니까 좋다!! 케인스는 신문사와 그의 유명세를 이용해 블룸즈버리 멤버들에게 일을 찾아주고 그들의 후반기 인생에 돈과 명성을 만들어주었다. 버지니아 울프 남편에게도 일자리 하나 꽂아 주었음. 케인스 자신도 자유당에서 가장 유명한 당원이 되어 선거철이 되면 누구나 그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나는 배고픈 예술가보다는 케인스처럼 살아생전에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이 좋다. 친구들 다 먹여 살리고 예술인들을 후원해주고.. 얼마나 멋있어.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한편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독일은 프랑스에 배상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됐다. 이에 프랑스는 독일의 탄광을 점령하려고 군대를 보냈고 독일은 강하게 저항했다. 혼란 속에 드디어 미국이 개입하여 도스안( Dowes Plan)을 만드는데..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러했다.


미국이 독일에 돈 빌려준다.         

독일은 그 돈을 배상금으로 영국, 프랑스에 준다.      

영국, 프랑스는 그 돈을 미국에 보내 빚을 갚는다.    

다시 미국이 독일에 돈 빌려준다.... 사이클이 또 시작되는 것이다.         



이거 어디서 들었던  아님? 바로 케인스가 파리에서 이렇게 하자고 얘기했었는데... 그때는  듣다가  값을 치르고 나서 뒤늦게 따라한 셈이다.  계획의 설계자들도 케인스의 눈치가 보였나 보다. 영국 대표는 계획이 공개되기 전에 미리 케인스에게 편지를 보내 다들 선생님이 뭐라 할까 궁금해한다며, 그러니 당장은 터지는 분노를  진정하시라고 부탁했다. (1924)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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