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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토켈리 Sep 27. 2024

버틸 것인가, 버릴 것인가

법인 파산 의사결정

다가오는 결정의 순간


잘 안될 거라는 생각을 갖고 시작하는 창업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창업자로 성장해 가는 길은 그야말로 울퉁불퉁 험난하다.


마음이 맞는 팀원들을 만나고, 그들과 PMF를 찾아내고, 좋은 투자자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은 매 번 큰 도전이다. 한 사이클의 도전을 넘어서도 새로운 레벨의 도전이 열린다. 내가 아는 한 대표님은, 창업 초기 천진하고 호기심 넘치는 장난꾸러기 같은 인상이었는데 몇 년이 지난 뒤, 마치 수도승 같은 분위기로 변해있었다.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챌린지 뒤에 또 챌린지가 이어지는 어느 순간, 잘 안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매 달 월급날 근처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현금이 얼마나 남았는지 초조하게 헤아린다. 매출이 날 만한 프로젝트를 손 닿는 대로 찾아본다. 정신없이 투자자 미팅을 잡고 만나러 다닌다. 불안하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어느새 팀원들에게도 불안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버틸 것인가, 버릴 것인가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6개월


이제야 방향이 명확하게 보이는데...

드디어 팀원들이랑 손발이 맞기 시작하는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23년 상반기, 스타트업 투자 침체기가 이어지면서 어쩌면 올해 안에 투자유치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상반기 중에 창업도약패키지에 선정되었다. 당장 투자금이 안 들어와도 연말까지는 버텨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안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되,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될 경우의 시나리오도 대비해야 했다.


보증대출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법인 파산이 유일한 옵션이었다. 이 옵션을 염두에 두고, 해야할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투자 유치가 가장 급했다.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있는 인맥 없는 인맥을 다 털었다. 어느 투자사의 어떤 펀드가 지금 소진해야 하는 자금이 얼마 있다더라, 어떤 투자사의 누가 이쪽 분야 투자한다더라 등등 뾰족하게 타게팅해서 투자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이런저런 중간지원기관에서 진행하는 IR 매칭 데이 자리에도 기회 닿는대로 빠짐없이 나갔다. 그런 자리에서 실제 투자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할 수 있는 걸 다 하지 못하면, 마지막 정리하는 순간에 내가 떳떳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재무 담당자에게는 모든 상황을 공유했고, 이 친구는 거의 주단위로 내게 현금현황을 보고해 줬다. 다시 생각해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들고 나는 현금을 활용해서 최대한 런웨이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팀원들에게도 투자 환경이 어려워진 상황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주간 미팅에서는 지난주에 만난 투자자는 어땠는지, 이번 주엔 누구를 만날 예정인지 시시콜콜해도 오픈해서 얘기했다. 투자유치는 이렇게 노력하고 있고, 연말까지는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잘 안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너무 늦지 않게 모두에게 알리겠다. 그렇게 소통했다.


그 무렵 우리가 운영 중이던 앱과 유사한 앱 개발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왔다. 우리에게 전략적 투자를 한 주주 기업에서 도움 주는 목적 반, 필요에 의한 목적 반으로 주신 의뢰였다. 우리 앱은 이미 유지보수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 개발업무가 많지 않은 반면, 기획자 포함 개발팀은 5명이나 되었다. 더구나 대부분 1년 차가 갓 되기 직전인 신입이었다. 무슨 프로젝트던 경험을 더 쌓게 하는 게 이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었고, 회사의 현금흐름에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다른 회사 앱을 개발한다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투자 유치가 빠르게 되지 않는 상황을 이야기해 왔기 때문에, 당장의 현금을 만들 수 있는 앱 개발 프로젝트 진행에 대한 반발은 없었다.


개발팀이 아닌 나머지 팀원들은 먹거리를 찾아 헤맸다. 새로운 사업 모델 가능성을 보기 위해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발전 가능성이 보였다. 콜라보를 통해 더 빨리 성장시킬 방법도 찾아 나섰다. 그렇게 다 같이 열심히 뛰었다.


선택의 순간에 성실함 발휘하기


나는 파일럿 프로젝트와 투자 유치를 동시에 진행하기 위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했다.


이를 악물었다.

나도 장난기 많고 대체로 낙천적인 편이지만, 나를 오래 안 지인이 이 시기의 나를 봤다면 왜 이렇게 사람이 시들시들해졌냐고 했을 것이다.


선택의 순간에 성실함을 발휘하라라는 말이 있다. 어디서 픽업한 문장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20대의 어느 순간부터 노트 한 구석을 차지한 문장이다. 지금이 그 성실함을 발휘해야 할 때였다.


비가 오던, 눈이 오던 전날 몇 시에 잤던, 열이 몇 도까지 올랐던, 일단 회사로 갔다. 가서 휴게실에 한두 시간 뻗어있더라도 일단은 가야 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더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성실함을 발휘했다. 죽은 듯이 자고 싶은 순간에도, 아이랑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순간에도.


우리 회사 주주 중 한 분과 이 주제의 대화를 나눴다. 결국 잘 안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해볼 걸 다 해보지 못해서 후회가 남는다면, 모든 게 끝난 후 대표자의 삶의 무너질 수 있다. 그 이후에도 살아가기 위해선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다 해보아야 한다.라고.


마침내 결정의 순간


12월 말이 런웨이의 끝이었다.


12월 18일에 마지막으로 잡혀있던 투자자 미팅을 했다. 2월까지 소진해야 하는 펀드를 담당하는 심사역이었다. 원래 투자하기로 했던 곳이 엎어질 것 같아서 우리 회사 미팅을 잡았는데, 기존 투자건이 다시 살아날 것 같다고 했다. 그 순간 알았다. 아 이제 끝이구나.


더 버틸 방법은 없었다. 우리도 스타트업이 흔히받는 보증대출을 받았고, 이듬해 5월 원리금 상환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원을 대폭 줄이더라도 5월이 되기 전에 턴어라운드의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했을 때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게다가 당시 우리 회사는 이미 창업 7년 차가 지나있었다. (사내벤처로 출발한 복잡한 히스토리로 실제 내가 지분 취득하기 3년 전에 이미 법인이 설립되어 있었다) 7년 차가 넘은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도 이제 거의 없을 것이었다.


12월 18일 투자자 미팅 마치고 1시간 정도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리고 방에서 나와 바로 결정을 내렸다.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유일한 결정이었으니까. 결정이 늦어지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법인 파산 절차 진행에는 돈이 많이 든다. 직원들 월급, 퇴직금, 세금 등도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한 푼도 안 남는 상황까지 가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날 바로 모든 투자자들에게 전화로 연락을 돌렸다. 모두 내 결정을 존중해 주셨고, 그 순간 내게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좋은 투자자들을 만난 복이었다. 유선으로 전화를 돌리고 1월 중에 주주간담회를 잡아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무엇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가


의사결정은 12월 18일에 내렸지만, 사실 준비는 이미 상반기부터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투자자들에게 어려운 상황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왔고, 직원들도 마음의 대비를 할 수 있게 필요한 정보를 공유해왔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 있었기에, 법인 파산 절차를 진행하면서 적어도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법인에 돈이 남아있을 때 결정을 내렸기에, 직원들에게 줘야 할 돈을 빠짐없이 줄 수 있었다.


법인 파산을 옵션으로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다음 3가지는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잘 안될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현금흐름을 관리하는 것,

둘째, 법인파산에 필요한 비용까지 다 소진해서는 안된다는 것,

셋째, 잘 안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투자자, 직원들과 소통하는 것




결국 버리는 결정을 하게 되더라도


이제와 돌아보면, 그렇게 사람이 시들시들해지면서도 꾸역꾸역 성실하게 버텨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 더했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이런 후회가 남았다면 이후 나의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이 훨씬 더 더디고 힘들었을 것이다. 할 만큼 했다는 걸 알기에, 실패로 쪼그라드는 마음을 털어내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결국 버티지 않고 버리는 결정을 하더라도, 그 과정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성실함을 발휘하기. 그게 법인 파산 프로젝트 전, 창업자가 해야 할 일이다.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법인 파산에 필요한 절차들을 하나씩 헤쳐나가는 것이다. 과정은 다음 글에서 차차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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