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의 쓸모
어느 스타트업이 몇 백억 투자를 받았다더라. 이렇게 대박 나는 스타트업이 많나? 싶을 정도로 잘 나가는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는 흔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수많은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바다 거북이의 수많은 알 중에서 어른이 되는 거북이보다 성장 과정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는 거북이가 훨씬 많은 것처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성공하는 스타트업보다는 중간에 실패하고 사라지는 스타트업이 더 많다. 스타트업 생태계란 원래 그런 것이다. 실험적이고 리스크가 큰 사업모델을 갖는 것이 스타트업의 태생이니까.
첫 창업자의 실패율은 특히 높다. 기술력 하나 있다고 스타트업이 성공 궤도에 오르진 않는다. 제 때 자금을 구하고, 마켓핏을 찾아내고, 회사가 궤도에 오르는 과정을 한 마음 한 뜻으로 함께 할 팀까지 잘 만들어져도 정말 끝까지 잘 되는 스타트업은 많지 않다. 그런데 두 번째 창업부터는 실패율이 낮아진다. 올 초 중소기업벤처부에서 낸 통계에 따르면 재도전 지원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3년 차 생존율은 84.6%로 같은 기간 첫 창업 기업의 생존율 44.6%보다 월등히 높았다. 첫 창업에서 넘어지고 깨지며 배운 것들, 그 실패의 경험들이 재창업에서 제대로 작동한다는 얘기다.
만약 바다 거북이가 인생 2회 차를 살 수 있다면, 인생 1회 차의 경험을 바탕으로 바다의 수많은 위험을 피하고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바다 거북이는 인생 2회 차를 살 수 없지만, 창업자는 다르다. 첫 도전의 경험에서 얻은 레슨런을 바탕으로 2회 차 도전을 이어갈 수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 관점에서는 첫 창업자의 도전이 마치 2회 차인 것처럼 도움을 줄 방법이 있다. 바로 실패한 창업자들의 스토리가 첫 창업자들에게 더 많이 가 닿게 하는 것이다.
하나의 스타트업이 잘 되기 위해 작동해야 하는 수많은 변수들, 그 과정을 헤쳐 나가며 얻은 귀중한 실패 경험은 또 다른 창업자의 '레슨런'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나 소중하게 활용될 수 있는 실패한 창업 경험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이야기하고 있을까?
벤처 투자 혹한기, 많은 스타트업들이 쓰러져가는 시기가 되니, 분별 있는 몇몇 투자사들의 주도로 창업 실패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조금은 더 많아지고 있다. 누군가의 실패 경험은 또 다른 누군가의 생존율을 높여준다. 실패를 실패 그대로 두지 않고, 긍정적인 스토리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창업자의 마음도 치유된다. 실패에 대해 풀어내는 이야기가 많아진다면 새로운 도전도, 다시 하는 도전도 더 많아질 수 있다.
하지만 실패는 창업자에게 분명 뼈아픈 경험이다. 그 이야기를 다른 창업가들에게 담담하게 나눌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실패 스토리를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치유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남들 앞에서 실패 이야기를 처음 꺼낼 수 있게 되기까지 내게는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후 또 3개월, 조금은 차분해진 마음으로 그동안 부글부글 속에서 끓던 이야기를 글로 끄집어낼 결심이 섰다.
한 회사가 실패로 끝났다 해도, 그 과정의 모든 것이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과정의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무렇게나 절차를 끝내버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모든 여정을 최선을 다해 마무리한 이야기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많은 배움을 얻고 성장한 한 사람은 남는다. 명예로운 exit이란 그 마지막 한 사람의 다음 여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생의 7년을 쏟아부은 나의 스타트업은 사라졌지만, 그 쓸모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그 사라진 것의 쓸모를 차근차근 찾아나가 보려고 한다. 법인 파산을 고민하고 있는, 또는 법인 파산을 앞두고 있는 많은 창업자들에게 쓸모있는 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