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아마 대부분의 영화감독, 작가들은 작업 과정에서 일에 대한 권태를 느낄 거다. 처음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부터 영화가 완성 되어 (극장이든 OTT플랫폼이든) 관객을 만나기까지 짧게는 2~3년 길게는 5~6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긴 시간 동안 창작하는 주체로서 감독과 작가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믿는 동시에 의심해야 한다. ‘방향에 맞게 잘 가고 있는지’, ‘전체적인 구성이 조화로운지’, ‘고유의 스타일이 있는지’ 같은 고상한 고민부터 ‘스타를 캐스팅 할 수 있을지’,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 심지어 ‘잔금은 다 받을 수 있을지’ 같은 현실적인 고민까지 정말 다양하게 하기 때문에 어떤 작품을 하느냐가 앞으로 2~6년 삶의 질적 양적 만족도를 좌우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감독과 작가들은 작품을 선택하는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같은 이유로 나도 만들 작품에 대해 고민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시놉시스(10p정도의 줄거리)나 트리트먼트(30p정도의 구체적인 스토리) 혹은 시나리오 초고 정도까지는 그때그때 써놓지만 ‘만들고 말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한참 고민 한 후에 한다.
사실은 ‘일을 하는 것’이 최우선인 신인 감독인지라 계약하는 작품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알게 된 두 가지 사실은
첫째 '(능력적인 면에서도 양심적인 면에서도) 어차피 아무거나 만들 수 없다는 것'.
둘째 '내가 사랑할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다. (오글거리는 거리지만 여기엔 꼭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야겠다.)
단순히 좋거나 매력을 느끼는 걸 넘어 그 대상의 결함까지 포용할 수 있는. 그러니까 만듦새가 부족하고 누군가 이해하지 못할 면도 있으며 심지어 지루한 부분이 있어도 내가 ‘기꺼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영화 말이다. 적어도 그런 대상이어야 2~6년의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영향을 준 영화들도 그러하다. 그중엔 대다수가 걸작이라 칭송하는 작품도 있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기준을 이해할 수 없는 작품도 있다. (애초에 사랑이란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개인적인이고 복잡한 감정이기 때문)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영화들이 있다.
이제부터 그 영화들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이건 길고 긴 작업을 하는 영화감독이 권태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하는 소소한 일탈이자
나라는 개인이 어떠한 것을 사랑하는지 돌아보는 개인적인 연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