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돌을 파게 될 줄이야

- 전각 혹은 손도장 1

by 오홍

회사를 다니고 4~5년쯤 되었을까? 주말이면 책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잔뜩 빌려서 주말을 보내던 일도 지겨워지고 그즈음 책 대여점들도 불황을 맞아 하나둘 문을 닫고 있었다. 일상의 활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배워 볼까 하던 차에 우연히 광화문 경향신문 건물에서 수제도장 3개월 과정에 대한 광고를 보게 되었다. 당시에는 문화센터 강좌가 활성화되고 있어서 학기가 시작될 때면 재미있는 수업이 없나 뒤지고는 했었다.
내 손으로 내 이름을 새긴 도장이나 팔 수 있으면 남는 거라는 생각으로 1주일에 한 번 회사를 마치고 신림역에서 광화문까지 가서 저녁반 수업을 들었다. 민예총에서 주관해서 하는 강좌라 강사 선생님도 중국, 일본에서 오래 공부하신 서예, 전각 전공자였다. 대학 강의도 하고 계셨다.

‘이런 분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이런 생각도 들면서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학창 시절 칼로 지우개 스탬프를 파 본 경험이 있었지만 돌을 판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지우개와 달리 차갑고 딱딱한 그 작은 돌을 손에 쥐고는 정말 팔 수 있는 건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전각에 대한 기본 이론을 배우고 바로 문양 파기를 했다. 어려운 이론이나 기본기를 다지는 것보다 매 수업마다 결과물을 가져가도록 하는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직선 연습, 곡선 연습 몇 번을 하고 원하는 문양을 골라서 팔 수 있었다.


샘플 문양. 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모두 중급 이상이 되어야 팔 수 있는 정도의 문양이다.


전각에서 쓰는 돌은 사람이 손으로 팔 수 있을 정도의 무른 돌이었다. 가장 많이 쓰는 돌이 요녕 지방에서 나는 ‘요녕석’이다.(돌의 이름은 대체로 나는 지역 이름이 붙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해남에서 나는 ‘해남석’이 유일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런데 전각에서 파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돌을 가는 일이었다. 서예를 처음 배울 때 벼루에 먹을 가는 일보다 못해도 열 배는 더 힘든 일이다. 먹은 갈지 않으면 먹물을 쓰면 되지만 전각에서 돌을 갈지 않으려면 새 돌을 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돌 값이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잘못 파서 망친 돌은 사포에 갈아서 다시 편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갈기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돌의 아랫면이 수평이 맞아야 도장을 찍었을 때 다 찍히기 때문에 완벽하게 수평을 맞추어서 돌을 가는 일은 꽤나 고역이었다. 온 신경을 손가락 끝에 집중해 돌의 중심을 느끼면서 힘을 주어 간 다음, 어느 정도 갈렸다 싶으면 돌을 살살 좌우로 밀면서 수평을 맞추는 것이다.

물론 도저히 수평을 못 맞추겠다 싶으면 찍을 때 도장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찍으면 될 일이다. 이건 섬세한 작업을 할 때는 권할 만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돌 가는 일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튼 초보다 보니 자꾸 실패를 해서 고작 5분 파고, 30분 동안 돌을 갈아야 하는 상황이 속출했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더 수평이 맞지 않아 수업의 절반 이상을 돌만 갈다 가는 사람도 개중에 있다.

강좌 인원은 15명 남짓이었는 각자 선에서도 개성이 보인다. 삐뚤빼뚤 선이 제멋대로이지만 그 어설픈 선조차도 인주를 묻혀 찍어 보니 예술가가 갈겨 그린 그림처럼 보였다.

2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의 긴 수업이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각을 배웠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재료가 필요 없으며, 집중할 수 있는 취미가 생겼다.




전각의 장점은 아주 작은 공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도구도 돌과 칼만 있으면 된다. 사포는 늘 필요하나 여분의 돌을 준비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실수하지 않으면 당장 사포도 없어도 된다. 인주는 아주 작고 저렴한 인주여도 상관없으며 종이도 A4 귀퉁이여도 상관없다. 대단한 작품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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