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각 혹은 손도장 2
전각 수업에서 주로 쓰는 돌 사이즈는 가로세로 2~1.5cm 정도되는 작은 돌이다. 거기에 문양도 파 보고 글자도 파 보면서 감각을 익히는데, 신기하게도 작은 사각형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점점 커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칼이 어떻게 지나가냐에 따라 달라지는 선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선을 칼로 다듬고 인주를 묻혀 찍어 확인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다보면 전혀 달라지는 모습에서 성취감이 크다.
그런데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걸 되돌리게 하는 것도 전각이다. 도장을 찍었을 때 문양이나 글자가 하얗게 나오는 ‘음각’은 파야 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수월하고 잘못 파도 수정이 용이하다. 하지만 선을 살려야 하는 ‘양각’은 실수를 하면 전체를 다 갈아야 해서 음각보다는 어렵다.
3개월 과정 동안에는 쉬운 문양부터 비교적 복잡한 동물 문양까지 수준을 점점 높여 가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마무리다. 고양이의 수염, 원숭이의 꼬리, 호랑이의 눈에서 실수를 하면 장애를 가진 괴상한 동물이 되고 만다. 그래도 글자보다는 낫다. ‘강’이 ‘깅’, ‘박’이 ‘빅’이 되기도 하고 동그라미가 떨어져 나가거나 선이 뚝 잘리기도 하는데, 그럼 이 돌은 무조건 사포행이다.
한 두어 번 돌을 갈다 보면 울화통이 치밀기도 하는데, 그럴 땐 돌을 내려놓고 전각 책을 보거나 다른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아니면 대여섯 개의 돌을 꺼내서 미리 갈아놓는 것도 좋다. 언젠가 갈아야 할 돌이므로.
아무리 평평하게 갈아놓은 돌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초칠 혹은 왁스칠이 되어 있으니 찍히는 면은 항상 시작 전에 갈아두는 것이 좋다. 수정 작업을 하면 한두 번 이상은 갈게 되긴 하지만 그냥 팠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다.
내 이름을 설계하고 주변 지인들의 이름을 네모난 공간 속에 채워 넣으면서 '어, 나중에 도장가게 차려서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때는 스마트폰을 지문이나 홍채로 인식하는 시대가 금방 올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내 기억 속의 도장가게는 동네에는 꼭 하나쯤은 있었고, 어느 집에나 급하게 판 목도장이 몇 개나 있었으니 수요가 있는 직업 중 하나였다. 게다가 별로 힘든 일도 아니고 1평도 안 되는 공간만 있으면 혼자 먹고 살 정도는 되겠다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달라지고 있었고, 목도장과 옥도장은 손으로 팔 수 없다는 것도 몰랐던 시기였다.
전각을 처음 배울 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양각과 음각의 개념이다. 양각은 내가 찍으려고 하는 문양을 제외한 부분을 파는 것을 말한다. 음각은 내가 찍으려고 하는 문양을 파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래도 음각이 수월하다. 얇은 선을 남기고 바깥쪽을 팔 때는 아무래도 힘 조절에 실패해 선이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