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의 진실/성냥팔이 소녀

성냥팔이 소녀(브런치X저작권위원회)

by 오홍

그저 추위를 이기려고 가지고 있던 성냥을 켰을 뿐이었다. 어제, 그제와 마찬가지로 성냥은 팔리지 않았지만 오늘처럼 추운 날씨에는 성냥을 찾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주섬주섬 챙겨온 성냥이었다. 아무리 추워도 돈을 받고 팔아야 하는 성냥을 켜는 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어느 때보다 바람이 매섭다. 쌓인 눈이 녹지도 않았는데 또 눈이 쏟아질 것 같다.

골목을 찾아 담배를 피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어두컴컴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골목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성냥 사세요.”

목소리를 내 봐도 골목 안으로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목소리는 거리로 퍼져 나가지도 못한다. 이 정도 바람이면 바로 옆 사람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터이다.

오늘도 성냥을 팔지 못하면 내일부터는 굶어야 한다. 아껴 두었던 감자 하나를 들고 올까 했지만 품속에 감자가 있으면 참지 못하고 베어 물 것 같아 몇 번을 들었다 놨다, 돌아보고는 침대 옆 선반에 두고 왔다. 감자 생각을 하니 추위에 잊고 있었던 허기가 밀려왔다.

바람을 피해 몸을 골목 쪽으로 돌리고 성냥 하나를 그었다. 쉬이익 하며 금세 불이 붙었다. 너무 가까이 대고 있다가 코끝이 데일 뻔했다. 앞머리 끝만 약간 탔는데, 그 냄새조차 고소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타면 고기 굽는 냄새가 날까 생각하다가 머릿속에 그림이 떠오르니 소름이 돋았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성냥은 환한 빛을 내며 잘만 탔다, 타는 걸 좀 더 늦추어 보려고 똑바로 세우고 가만히 성냥을 바라보았다.

‘이 심지 속은 얼마나 따뜻할까.’

할 수만 있다면 오렌지 빛을 성냥의 불꽃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때 성냥 불꽃 너머로 이상한 형체가 보였다. 불꽃 너머 그러니까 골목 끝에 사람이 있었던 걸까?

성냥이 곧 꺼지고, 눈앞에 불빛의 잔상이 남아서 눈을 껌벅껌벅하고 고개를 몇 번 흔들었다. 노랗고, 하얀 점들이 점점 작아지더니 눈앞이 선명해졌다.

그래도 몇 번 더 눈을 떴다 감고는 가만히 골목 안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달라진 것도 없고, 그냥 어둠만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일렁이는 불빛을 잘못 본 거겠지?’

하지만 거리를 지나는 사람도 없고, 정말 잘못 본 걸까 계속 마음에 남아 두 번째 성냥을 그었다.

“쉬이익, 화륵.”

불빛보다 불빛 너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있다! 뭔가 형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

엉겨 붙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가 상대를 붙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타는 성냥을 치우면 어둠만 있는 공간. 불빛 너머로 보면 나타나는 사람들. 놀라기도 하고 형체를 살피느라 성냥이 타는 줄도 모르고 손끝을 데이고 말았다.

점점 더 선명해지는 형체는 누구일까? 다음 성냥을 켰는데 그들이 자신을 발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침 길을 지나던 한 중년 신사가 골목 안을 바라보는 소녀를 이상한 눈으로 흘긋 보고는 지나갔다. 신사가 지나간 자리에는 큰 발자국이 신사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소녀는 두 개나 써 버린 성냥을 내려다보았다. 끝자리만 조금 나무 조각이 남아 있는 성냥에는 까만 머리가 꼭 음표처럼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온기가 있을 때 바닥에 닿아서인지 성냥 주변은 움푹 패여 성냥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궁금해서 이젠 성냥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음 성냥을 다시 켰다. 한 사람은 남자, 한 사람은 여자였다. 꽤 나이가 많은 여자. 두건을 쓰고, 바닥이 닳은 털신을 신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어느 덧 성냥은 열다섯 개째다.

남은 성냥은 이제 다섯 개. 다섯 개만 남은 성냥을 팔 수도 없으니 그 두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기라도 하자.

열여섯 개째 성냥 불빛 속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짐을 빼앗았고, 휙 여자를 밀쳤다. 골목 벽에 머리를 찧은 여자는 아픈 기색도 없이 곧바로 남자의 팔을 잡았고 남자는 뿌리쳤다.

열일곱 개째에서 남자는 사라졌다. 여자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쫓아갈 생각인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아, 그냥 두시지.’

소녀는 이게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손을 휘저었다.

열여덟 개째, 여자는 휘적휘적 거리며 떨어진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벽에 부딪힌 뒤통수를 손으로 감쌌다. 그런 다음 한 걸음씩 소녀 쪽으로 다가왔다.

소녀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성냥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성냥은 반도 타지 못하고 눈에 닿아 꺼져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다음 성냥을 켰을 때 여자가 더 다가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하지만 여자가 무사한지,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 두 개만 남은 성냥. 아무리 궁금해도 새 성냥에 손을 댈 순 없다. 이 두 개만. 이 두 개까지만.

열아홉 개째 성냥에 불이 붙자 여자가 점점 소녀 쪽으로 다가왔다. 소녀의 눈이 점점 커졌다. 놀라서인지 슬퍼서인지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할… 할머니?’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감자 3개가 담긴 너덜너덜해진 봉투를 들고 소녀 쪽으로 다가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까워졌다 싶을 때 야속하게도 성냥이 꺼지고 말았다.

마지막 한 개비. 할머니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할머니를 다시 보게 되다니.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이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길이 미끄러워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것 같네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할머니의 지니고 있었다며 건네받은 감자 3개. 그 마지막 감자가 지금 침대 옆 선반에 있는 감자였다. 열흘쯤 되었으니 크기는 3분의 2로 줄어들었고, 껍질에는 주름이 더 많아진 감자.

소녀는 마지막 성냥을 그었다. 할머니는 아까의 모습과는 다르게 환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소녀도 손을 뻗었다.

잘 익은 감자처럼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졌다.

“할머니가 꼭 나를 만나러 올 줄 알았어. 그래서 마지막 감자를 안 먹었어. 그럼 할머니가 영영 사라질까 봐.”

소녀는 몸을 일으키며 할머니 쪽으로 다가갔고, 그 순간 소녀의 몸은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소녀의 얼굴은 꼭 맞는 가면을 쓴 것처럼 눈 속으로 폭 사라졌다.






*********

춥고 어두운 뒷골목 입구에서 성냥을 파는 소녀를 떠올리며,

가혹한 현실을 이겨내는 희망적인 이야기보다

소녀에게 닥친 추위와 배고픔, 절망을 남 이야기처럼 덤덤히 써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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