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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Oct 12. 2020

[엄마와 세번의 여행] 프롤로그 :시작의 서막

서른이 되는 해 삼백만 원을 줄게

 “서른이 되는 해 엄마에게 삼백만 원을 줄게”


  서른이 되기 두 해 전부터 내가 엄마에게 호언장담했던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왔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마음은 대학 등록금을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어 그동안 학교에 낸 돈을 다 계산해봤지만 현실적으로 내 월급에 그만큼의 금액은 힘들었고 서른이니 숫자를 맞춰 삼백만 원을 드리겠다고 혼자 결심했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20대 사회 초년생에겐 목돈인지라 ‘엄마300’이라는 타이틀을 정하고 꾸준히 돈을 매달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서른이 된 그 해, 돈을 주기로 했던 딸의 마음이 바뀌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나의 가장 큰 낙은 돈을 모으고 달력의 빨간날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연차를 쓰는 분위기가 아니라 눈치가 보였고 여름휴가는 삼 일에 불과했다. 사회적으로도 대기업이나 긴 휴가가 가능했고 중소기업들은 이틀에서 삼일이 여름휴가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빨간 날만 생기면 어떻게 놀러갈까 궁리했다. 먼 곳으로 길게 가진 못하지만 사정이 되는대로 일본, 홍콩, 푸껫 등 가까운 곳을 여행했다. 여행을 한 번 맛보고 나니 끊기 어려웠고 그 시절 나의 달력은 여행 갈 수 있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로 나뉘었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을 가까운 사람들 특히 엄마가 알았으면 했다. 

 사실 내가 서른이 되기까지 엄마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해외여행은커녕 사실 비행기도 한 번 탄 적이 없었다. 나와 남동생을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엄마는 항상 빽빽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후엔 우리의 등록금 때문에 힘든 일까지 시작하셨었다. 어릴 적 나는 그런 우리집 형편이 싫어 일부러 외면하곤 했다. 학생일 때는 집안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여름방학 때 한 달간 일본으로 단기연수를 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철없던 나를 돌이켜보면 그런 나에게 왜 엄마는 화 한 번 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 끝에 그 시절 엄마가 나를 보내줬던 일본으로 이번에는 함께 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엄마, 내가 엄마 주려고 삼백만 원을 모았는데 이 중 백만 원만 써서 일본으로 여행 갈래?”


  엄마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나의 여행 욕구도 채우는 꼼수였다. 하지만 엄마는 흔쾌히 승낙했고 갓 서른이 된 딸과 예순을 바라보는 쉰일곱살의 엄마의 첫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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