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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Oct 14. 2020

[엄마와 세번의 여행] 후쿠오카#1. 엄마를 위한 여행

처음으로 내가 아닌 남을 위한 하루를 생각하다.

  1986년 4월 21일, 긴 시간의 진통 끝에 새벽 네 시가 지나서야 엄마는 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낳은 딸은 -엄마 말론 알아서 잘 컸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엄마 속을 박박 긁으며 무럭무럭 자라 서른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세상을 알게 되면서 뒤늦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 집이 내가 생각 한 것보다 형편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돈을 벌고 나니 제한된 돈으로 엄마가 얼마나 날 힘들게 키웠는지 알게 됐다. 우리 형편에 나와 동생 대학을 보낸 것만으로도 엄마는 정말 큰일을 했음을 느꼈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현실들을 회피하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보호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고생하는 엄마가 좋은 걸 보고 맛있는 걸 먹었으면 했다. 그래서 더더욱 엄마와의 여행이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필요했다.


  부산-후쿠오카는 비행기로 4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비행기로 50분이 걸리는 제주도보다 부산에선 가까운 거리다. 당시 엄마와 나 둘 다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긴 시간을 내는 건 쉽지 않았다. 토일월 이렇게 2박 3일의 일정을 정하고 시간과 가격 대비 가장 효율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후쿠오카가 우리의 첫 여행지가 됐다. 

당시 여행 계획의 일부

  나의 즐거움을 위한 여행이 아닌 타인이 중점이 되어 그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여행은 처음이었다. 여행의 포커스는 ‘많이 걷지 않는 여행’이었다. 친구와 같이 갔다면 무작정 걸어 다녔을 거리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걸로 계획을 짰다. 가고 싶던 쇼핑몰은 빼고 관광지 위주의 장소 방문으로 일정을 짰다. 아마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좋아하는 건 뭘까를 고민하며 엄마 위주의 하루하루를 생각해본 것 같다.

 ‘엄마랑 함께 여행을 하면 싸운다더라, 엄마가 조금만 걸어도 짜증을 낸다더라’ 등의 모녀 여행 후기를 읽으며 걱정이 쌓였다. 좋자고 간 여행에서 안 좋은 기억만 갖고 오면 어쩌나 하는 고민으로 준비를 더 철저하게 했다. 대학생 때는 처음 며칠만 묵을 숙소만 정해 놓고 캄보디아와 방콕을 2주간 여행할 정도로 준비성이 없는 성격이었는데 사회생활을 하고 엑셀의 노예(?)가 되며 계획 짜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 엄마의 피로와 날씨의 변수를 고려하여 매일 두 개의 플랜 A,B를 짰다. 그 간의 여행 경험상 맛집을 찾는다고 돌아다니는 게 가장 힘들었기 때문에 각 구역마다 먹을 만한 식당을 여러 개 찾아 놓고 동선에 맞는 곳을 가기로 결심했다. 여러 장소를 물색하고 엄마가 좋아할 만한 곳, 좋아할 만한 음식인지 엄마에게 물어 다시 확인하고 그 장소를 일정에 넣는 작업의 반복하며 우리의 첫 여행의 윤곽이 서서히 만들어졌다. 


그리고 3월 28일, 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후쿠오카로 우리는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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