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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Oct 26. 2022

#17. [주부의 일상] 부모 번아웃

아이를 키우는 내 모습이 버거울 때

 올해 여름과 초가을은 감정적으로 힘든 계절이었다. 여러 상황이 겹치면서 알 수 없는 우울감이 항상 마음 한 구석에 머물렀고, 이런 감정은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더욱 강하게 나를 덮쳤다. 등원 시간이 다가오는 아침에 옷을 안 입겠다고 도망가는 아이의 모습, 자기가 따라먹겠다고 조르다 실수로 엎어버린 우유, 남편이 늦게 오는 저녁 양치하기 싫다며 딴짓을 하는 모습 등 아이로서 당연할 수 있는 모습을 나는 참기 힘들었다. 현재 20층이 넘는 고층에 살고 있는데, 우울감이 고조될 때마다 그냥 모든 걸 내버려두고 뛰어내려 여기서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두 달 정도 강하게 지속됐다. 그렇게 마음이 힘들던 중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 발견했다. 바로 <부모 번아웃>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힘든 일로 인해 생긴 내 부정적인 감정을 살피고 현 상황을 번아웃이라 받아들이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여행, 문화생활 등으로 기분 전환을 도모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엄마라는 위치 번아웃이 오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일시적으로 힘든 상황이 나에게 찾아왔고 부모로서 이를 참고 견뎌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 번아웃>이라는 제목 자체가 내 상황을 말해줬다. 미국 저자의 책이고 한국의 상황과 일맥상통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면도 있었지만, 책을 읽으며 내가 부모 번아웃이라는 걸 인정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의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과거의 육아와 현재의 육아는 많은 차이를 갖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를 대하는 사회와 어른의 태도다. 부모 역할에 의문을 갖고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된 건 1990년대부터다. 미국의 사정이니 우리나라에선 아마 2000년대부터 부모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아이란 환상과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지만 좋은 모는 가능한 목표라 생각한다. 이런 인식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목표로 삼고 남과 나를  비교하며 부모 번아웃에 빠지는 원인이 된다.


올해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든 변화 중 하나는 아이의 유치원 자차 등하원이다. 아이를 원하는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서 나는 직접 자차로 등하원을 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수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지만 실제로 경험하니 예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아이를 차에 태워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시간 맞춰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려오는 일은 매일 마감 기한에 쫓기는 일을 처리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일을 하다 하원 준비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한다. “가기 싫다, 가기 싫다.” 누구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더욱 갑갑했다.     


책에서는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부모가 되는 일은 비교적 가벼운 취급을 받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선 경이로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외부에선 부모가 되며 생긴 나의 변화와 임무를 보편적인 일로 바라보니 개인적 입장에서 힘듦을 말해도 공감을 얻기 쉽지 않다. 육아를 핑계로 힘들다 말하는 건 괜히 엄살 부리는 것 같고 부모로서의 내 모자란 능력을 드러내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책에 번아웃 테스트가 있었는데, 모두가 잠든 늦은 밤 테스트를 해본 후 해설 페이지에서 85점 이상이 번아웃에 해당됨을 확인하고 잠시 숨을 멈췄다. 내 점수는 118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소리 죽인 눈물이 얼굴을 감싸며 흘렀다. 아, 내가 많이 지쳐있었구나. 개인적인 기준을 채우기 위해 욕심을 부리며 잘하고자 했던 것, 누군가에게 의지 하지 않으려고 했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내 목을 죄고 있었다. 번아웃의 국면 중 하나는 과도한 헌신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아이를 위한 그리고 타인을 위한 헌신이 악순환을 불러왔다.

     

책 뒤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요인과 나를 도와주는 요인을 구분하는 테스트도 있었다. 부모로서의 내가 역할을 다하기 위한 긍정적 부정적 요소를 살펴보고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테스트의 목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 번아웃 극복을 위해서는 내가 현재 부모로서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지 않으며,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소진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했다. 책을 읽으며 내가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에 빠졌다는 걸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 친정엄마에게 일주일에 한 번 아이의 하원을 부탁하고 있다. 그 전에는 종종 부탁을 할 때마다 엄마에게 미안한 감정이 앞섰는데 이제는 내가 살기 위한 길이라 생각하며 도움을 청한다.      


결혼 후 친정에 의존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나는 그들과 다르게 모든 걸 스스로 할 수 있다 자신했었다. 결혼은 독립의 시작이라 생각하고 양가에 의존하는 것은 선택지에 두지 않았다. 나의 선택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아이를 키우니 상황이 달라졌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나는 죽을 때까지 부모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면 지금만큼의 무게는 느끼지 않겠지만 오래도록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나의 짐을 좀 더 가볍게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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