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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Sep 07. 2022

#16. [주부의일상] 전업주부, 부업주부의 경계선

직업 칸의 공란을 채울 때

살다 보면 직업을 밝혀야 할 일이 종종 생긴다. 금융거래를 할 때, 설문조사를 할 때, 갖가지 등록 서류를 제출할 때 인적사항에 대한 질문은 빠지지 않는다. 이름, 생년월일, 주소의 빈칸들을 망설임 없이 채워나가다 직업란을 마주하면 속도를 늦추고 머뭇거리게 된다. '회사원, 자영업, 전문직, 학생, 주부, 공무원, 무직, 프리랜서, 기타 등' 몇 안 되는 선택권 중 나를 스쳐간 직업을 돌이켜 보고 현재 나의 자리는 어디인지 다시 생각한다. 어떤 날은 주부, 어떤 날은 프리랜서 혹은 기타-프리랜서는 기타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를 선택하고 씁쓸한 마음을 머금은 채 다음 질문으로 시선을 넘긴다. 일을 시작하고 스스로를 전업주부가 아니라 정의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모호하다.          


전업 : 한 가지 일이나 직업에 전념하여 일함. 또는 그 일이나 직업.
부업 : 본업 외에 여가를 이용하여 갖는 직업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 남편의 회사 일 때문에 돌봄의 공백이 생길 때 가장 먼저 조정되는 건 나의 일정이다. 미리 정해져 있던 나의 일을 미룰 수 있으면 미루고 그게 불가능할 때 친정에 도움을 청한다.  


얼마 전 일이다. 자는 내내 몸이 안 좋더니 결국 코로나 간이키트 두 줄을 확인했고 확진 판정을 받았다. 가장 먼저 몰려온 걱정은 현재 대면으로 하고 있는 수업이었다. 수업 보강이 안 되는 구조라 몸살 기운을 참아가며 여기저기 연락해 겨우 대체자를 구했다. 나의 확진 판정 며칠 뒤 아이도 확진 판정을 받아 아이와 함께 약 2주 간 격리를 했다. 아픈 몸보다 힘든 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었다. 초반에 내가 몸이 안 좋을 때는 내 몸을 돌볼 새 없이 아이를 챙겨야 했고, 아이의 확진 후에는 그 주에 나가야 할 수업 준비와 다른 일을 준비하느라 틈나는 대로 일해야 했다. 닥쳐오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은 뒤로 미뤄두었다.     


집에서 아이와 내가 고군분투를 할 때 남편의 일상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아침에는 골프연습장에 갔고, 두 차례의 저녁 회식에도 참여했다. 일이 있더라도 나와 아이의 확진이 남편의 일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늦어지는 퇴근 시간으로 인해 함께 있는 시간이 짧아서인지 아니면 정말 슈퍼 항체자인지 남편은 유일하게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넘어갔다.   

   

 그때 느꼈다. 남편에겐 내가 일을 안 하는 게 더 편하고 좋을 수 있겠구나. 아이의 돌봄에 공백이 생기지 않게 관리하고, 비상 상황에 남편을 대신해 움직일 수 있고, 집안일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남편에겐 더 편할지도 모른다. 나 또한 집안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나의 일을 위한 방향보다는 가정의 중심을 잡는데 아직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현재 내가 버는 소득은 가계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수준은 아니다. 하는 일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 많은 방향의 일을 할 수 있을 가능성에 의의가 크다. 주부와 프리랜서 사이의 무게를 재어보자면 주부의 방향으로 무게가 기우는 것이 현재 나의 위치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전업주부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정의 내렸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본 나는 부업거리가 있는 전업주부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 견해로-필수 조건은 아니지만-전업이라 말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소득은 벌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소득은 직업을 장기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소득만 생각하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고민이 생긴다. 좋다는 마음으로만 시작한 일이었다. 돌아보면 단지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것도 처음이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 것도 처음이다. 일반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기다릴지 몰랐지만 말이다. 좋아서 하는 지금 나의 일을 직업으로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까지 어떤 노력과 시간을 보내야 할까. 스스로 나를 정의 내릴 수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타인에게도 인정받을 수준까지 이루고 싶다. 


미래를 상상하면 기대되는 마음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더 나은 내가 되려는 확신은 갖고 있지만 그 결과가 타인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을까란 질문에 빠진다. 전업과 부업의 그 경계선 어딘가에서 십 년 뒤의 나는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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