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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May 31. 2022

#15.[주부의일상] '나'라는 집을 가꾸기

육아 후 폐가가 된 나

  어느 날 문득 아이를 낳기 전의 일상이 떠올랐다. 매일 팩을 하고, 네일이 지워질 날 없이 손을 다듬고, 계절마다 새 옷을 사 입었다. 퇴근 후에는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거나 뮤지컬 혹은 연주회를 보러 다녔고, 보고 싶은 영화가 나오면 놓치지 않고 찾아봤다. 종목을 바꿔가며 여러 운동을 했고 체력은 약했지만 몸의 뻐근함은 없었다. 당시에는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으나 돌이켜 보니 항상 배우는 걸 멈추지 않았고, 나를 위한 시간으로 꽉 찬 매일을 보낸 나날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 나의 시간은 온전히 아이와 살림으로 채워졌다. 거울 볼 새 없었고 아이 음식을 요리하다 혹시라도 네일 조각이 들어갈까 늘 맨손을 유지했다. 아이로 꽉 찬 하루 속에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었으며, 혹여 잠깐의 시간이 나더라도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운동은 허리가 아파 누워 있기도 힘들 때만 스트레칭을 하는 게 전부였다. 아이가 없다면 30대의 내 삶은 어떨까라는 상상 속 예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를 향한 삶이었으리란 추측은 가능했다.      



 대부분의 물건과 달리 집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 낡아버린다고 한다.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집안을 정리하고 고장 난 부분이 있으면 그때 그때 수리를 해줘야 한다. 산뜻한 집을 위해서는 벽지가 낡으면 도배를 새로 하고 계절에 맞는 인테리어의 변화도 줘야 한다. 육아에만 집중하며 보낸 삶은 ‘나라는 집’을 그대로 내버려 둔 시기였다. 정돈된 외관을 유지하도록 돌보지 않았고, 헤어진 마음을 수리하지도 않았으며, 산뜻한 삶을 위한 변화도 없었다. 나라는 집을 고치는 시간 없이 일을 시작하니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일을 하다가 체력이 부족해 쉽게 지치고 힘든 일이 생기면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정돈되지 않은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는 집중을 하기 힘들 듯 낡아버린 나라는 집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서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개인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그 시간을 잘 보냈냐고 물으면 그냥 아무 일 없이 흘러갔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폐가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정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좀 더 나에게 열중하여 가꾸는 시간을 가졌다면 지금의 나는 더 활기찬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미용실을 가고, 운동을 하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하고 싶던 공부도 하고. 의무감에 흘러가듯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돌본다는 생각으로 정성스럽게 이뤄나가는 시간이 엄마들에겐 필요하다. 나를 정비하는  시간이 없는 채로 일을 시작하니 어느 순간 몸이 지치고, 몸이 힘드니 아이의 칭얼거림에 화부터 나올 때가 많다. 무엇을 위해 이리 욕심을 내는가란 질문에 순간 주저앉게 된다.     



마음에 여유를 갖는 것과 별개로 나의 겉모습과 내면을 동시에 가꾸는 노력은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하다. 이제 아이가 조금 자리를 잡고 여유가 생긴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꼭 나를 가꾸는 시간을 가져라고. 나도 다시 나를 재정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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