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자아찾기] 내가 불친절한 사람이라고?
핸드폰 음성 녹음으로 알게 된 진실
3n 년 동안 나는 내가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스무 살이 넘어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편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지만 말이다. 새로운 모임에 참여할 때 어느 순간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이미 무리를 만들어 친하게 어울리는 것을 보며 당황한 경험이 꽤 있다. 대학 시절엔 참여했던 동아리에서, 공부를 하던 스터디 모임에서, 엄마가 되고 나선 동네 사람들 모임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계기가 있었다. 10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이폰을 쓰다가 몇 년 전 갤럭시로 폰을 바꿨다. 아이폰에 없는 갤럭시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통화 녹음'이다. 갤럭시의 통화 녹음 기능은 꽤 유용하다. 업체에 문의를 하거나 예약을 했던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 굳이 상대방에게 다시 연락을 하지 않고 음성 녹음을 통해 확인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보통 상대방의 말 중에서 궁금한 부분만 찾아 듣고 말기 때문에 내 음성은 듣지 않고 넘겼었다. 그러다 내가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의 목소리와 느낌을 집중해서 듣게 된 사건이 생겼다.
곧 이사 예정이라 지금 사는 집을 팔기 위해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이후 매수 의사가 있는 사람들에게 집을 보여주기 위해 부동산 소장님에게 연락이 오곤 했다. 어느 날 부동산 소장님과 연락한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아 약 20초가량의 짧은 통화를 다시 들으며 확인하는데 나의 퉁명한 통화 음성을 듣게 됐다.
집을 보러 와도 되냐는 소장님의 말에 대한 나의 체감상으론 "아~~ 네~~~"라고 대답한 것 같았는데 통화 녹음을 들어보니 "아, 네."의 느낌이었다. 내가 상대방이었다면 매우 무뚝뚝한 사람이란 인상을 받을 만한 음성이었다.
이를 계기로 상대방을 대할 때 내가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살펴보게 됐다. 그러다 꽤 오래 친하게 지내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20년을 알고 온 친구인데 뭔가 다가가기 어려운 성격은 아니지만 항상 친구와 나 사이에 벽이 있는 느낌이 드는 친구다. 철없던 시절에는 그 부분이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했는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 친구와 나는 닮은 점이 많았다. 오히려 그 친구가 좀 더 사람이 다가가기 좋은 타입이었다. 그 친구에게 내가 느꼈던 감정을 다른 사람들이 보며 느꼈을 거란 생각에 미치자 그 간 사람과의 관계에서 품었던 의혹이 해소되었다.
아, 나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구나. 사춘기 시절 나의 이상형은 '도도하고 시크한 느낌이 풍기는 차가운 사람'이었다. (사춘기 소녀의 치기 어린 로망이었다) 그냥 왠지 누군가가 나를 만만하게 보는 게 싫어서 일부러 시크하게 굴었던 것 같다. 그런 사춘기 시절의 성향이 여전히 몸에 베여있다는 걸 사춘기가 끝나고 거의 20년이 지난 후 알게 됐다. 처음엔 다 줄 것 같이 행동하다 뒤에 가서 몸을 사리며 빼는 성향도 무의식적으로 남아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알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알게 된 사실을 말하니 나에게 그 간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래 네가 싹싹한 타입은 아니지." 혹은 "뭔가 처음 친해지긴 쉬운 것 같은데 알고 나면 생각보다 쉬운 사람은 아니구나란 느낌이 있지."
이제 와서 스스로를 애써 바꿔 살진 않겠지만 스스로를 친절하다 여기며 착각하고 사는 것은 멈추게 됐다. 회사 다닐 때 신기하게 회사 사람들이, 특히 남자 직원들이, 나를 좀 어렵게 여기는 느낌을 받아서 타고난 사주가 그런가 싶었더니 쉬워 보이지 않은 나의 인상 때문이었다. 덕분에 혜택을 받은 점도 있었구나 싶다. 복합적인 감상에 빠져 지난날에 대한 회상을 하다 보니 동시에 이런 성격을 가진 내 주변에 계속해서 있어주는 사람들과 나를 사랑한다며 결혼까지 한 남편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게 다 갤럭시를 사고 생긴 자아 성찰이니 앞으로도 갤럭시를 쭈욱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