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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Sep 26. 2023

취미부자의 삶 : 영화가 좋아서

좋아하는 일이 의무가 될 때

 



  영화를 좋아했다. 심도 깊게 연구했던 수준은 아니지만 20대 가장 몰두했던 일을 말하라면 나에게 영화가 빠질 없다. 당시의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멋진 일이라 생각하며 상업 영화는 거의 보지 않았고 - 마블시리즈 영화를 보기 시작한 20대 끝자락에서였다- 영화제에서 받은 영화, 혹은 영화제에서 받은 감독의 영화만 주로 봤다. 영화의 전당의 시초인 시네마테크가 수영만요트경기장에 있을 때부터 회원 가입을 하고 들락날락거렸고, 부산 내에 있는 독립영화관은 모두 가봤다. 매주 시간표를 체크하며 볼만한 영화를 찾는 일상의 루틴 중 하나였고, 주말의 아침은 조조 영화로 시작했다. 가을을 기다리는 이유는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이었다. 영화제가 시작되면 주말에는 해운대에서 살다시피 했고, 평일 퇴근 왕복 시간이 걸리는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만큼 영화를 보는 일이 즐거웠다.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더라도 영화 가까이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그래서 서른이 되기 전 영화의 전당에서 주최하는 '영화비평교실' 수업을 수강했다. 글을 쓰는 전공을 가진 내가 영화 시장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글을 쓰는 일이 최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로를 고민하던 20대 후반의 여자의 작은 발걸음이었다.


'영화비평교실' 강의를 수료한 자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시민평론가가 될 수 있다. 시민평론가가 되면 영화제 게스트배지를 받고, 독립영화 비전 부분의 심사위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평론가의 자격을 갖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우선 영화 비평문을 한 편 제출하고 그 글이 통과해야 수업 수강의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더욱 어려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출석이었다. 7-8월에 거쳐 매주 토, 일요일 18시부터 21시까지 3시간의 수업을 80% 이상 참석해야 수료의 자격이 주어졌는데 한창 놀러 가기 좋은 한 여름의 주말 저녁마다 수업에 참석하는 건 쉽지 않았다. 수업은 매주 주어진 영화 한 편에 대한 비평문을 쓰고 모든 이의 글을 함께 읽은 후 합평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좋아하는 영화만 골라봤던 내게 주어진 영화를 보고 정해진 분량의 글을 매주 써내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 각 나라의 영화를 보고 나름대로의 인물을 분석하고 글을 쓰는 것, 게다가 회사를 다니고 있던 시절이라 퇴근 후 이 모든 것을 해야 했던 상황은 예상보다 벅찼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의무적인 사명감으로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영화비평교실은 내가 이런 과정을 즐거워할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의무적으로 행해야 할 때의 괴로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 간의 영화제 게스트 배지들



어쨌든 성실이 몸에 베인 나는 영화비평교실을 무사히 수료했고 현재 10년이 넘게 시민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예전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열정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한 때 내가 좋아했던 것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이동진 평론가의 인터뷰를 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더욱 열심히 한다"라는 말이 뇌리에 깊게 박혔는데 영화는 나의 '하고 싶은 일'의 영역에 들어오기엔 애정이 부족한 대상이었나 보다란 결론을 내린다. 영화비평교실의 같은 기수 중에서는 그 수업을 시작으로 꾸준히 영화와 관련된 활동을 하며 활약을 하는 멤버들도 있다. 그들을 볼 때면 나도 열심히 했다면 다르 길을 가고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그리고 저렇게 열정을 쏟을 만큼 애정하는 마음에 대한 부러움을 갖기도 한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거의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 집에서 티비로도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영화를 제대로 보는 건 오직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로 활동할 때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건 예전보다 어렵지 않다. 이제는 영화 속에 빠진 글이 아닌 영화 밖의 내가 투영되는 글을 쓰는 게 때론 즐겁다. 영화를 좋아하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은 달라졌다. 예전만큼 영화를 보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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