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자전거 혼자 타기
아이가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일곱 살 어린이날 선물로 보조 바퀴를 단 민트색 20인치 자전거를 사준 지 한 달 만이었다. 원래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라 금세 두발자전거에 익숙해질거라 생각했지만 안전을 이유로 가을까지는 네발자전거를 탔으면 했다. 120센티미터도 안 되는 키로 페달을 열심히 돌리며 속력을 낼 때면 보조 바퀴가 바닥에서 약간 떴는데, 그 찰나에 두 바퀴로만 중심을 잡는 느낌을 즐기며 “지금 두발자전거 타고 있어!”라며 외치곤 했다. 아파트의 미취학 또래들이 모인 보조 바퀴 자전거 부대에서 일등을 차치하며 스피드를 즐기던 어느 날, 아이를 지나가던 초등학생 형들이 네발자전거를 탄다며 놀려댔다. 아이는 그 말이 마음에 계속 남았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시무룩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바람과 달리 아이의 두발자전거에 대한 열망은 불타올랐지만, 혹시 모를 사고가 걱정되어 아이에게 두발자전거를 허락할 수 없었다.
자전거를 사고 한 달 정도 지나 넓은 장소에서 자전거를 타기 위해 교외의 공원으로 나간 어느 주말이었다.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어야 할 보조 바퀴 한쪽의 나사가 느슨해진 걸 발견했다. 남편이 힘을 주어 나사를 돌리니 한쪽이 쉽게 돌아갔다. 아이는 그 사실을 알고 양쪽 보조 바퀴를 다 빼달라고 성화였다. 다른 한쪽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어 도구 없이 제거하기 힘들어 일단 보조 바퀴 하나만 빼줬더니, 아이는 기뻐하며 날개 단 듯 공원을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양쪽 다 떼 줘도 잘 타겠다 싶긴 했다. 그래도 일주일만 더 보조 바퀴를 달고 타게 해야지 생각했건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남편은 기어코 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모두 제거해 줬다. 아이는 그길로 바로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가 두발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완전히 마스터했다.
유치원생인 아이에게 두발자전거를 탄다는 사실은 아파트에서 마주치는 초등학생 형들과 동등한 입장이 된 것 같은 어깨 으쓱해지는 일이다. 두발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면 유치원생이 맞냐며 놀라는 동네 아줌마의 물음에 아이는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엄마의 눈에는 속으로 씨익 웃고 있을 마음이 보인다. 자기 모습이 멋져 보이는지 보조 바퀴를 달고 다니는 또래 아이들이 지나가면 보란 듯이 쌩하고 속력을 높이면서 지나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외친다. “살살 달려!”
사실 두발자전거를 쉬이 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기특한 마음과 함께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자전거를 사러 간 날 나는 어릴 적 봤던 홈 무비에 나오는 한 장면에 우리 부부를 투영하며, 아이가 두발자전거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주는 나와 남편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자전거의 중심을 못 잡는 아이를 달래다 어느 순간 살짝 손을 놓으면 그 사실을 모르는 아이가 혼자 앞을 향해 나아가겠지. 그 모습을 꼭 영상으로 남겨두리라 혼자 다짐했다.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알려주는 건 부모가 가질 수 있는 멋진 과제 중 하나다. 마치 아기 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주는 부모 새와 같이 말이다. 내 아이의 추억 속에 엄마 아빠에게 두발자전거를 배우던 날의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는데 기대가 무색하게 아이는 혼자 냉큼 자전거를 타는 법을 익혀버렸다. 자랑 같지만 아이는 스스로 많은 것을 익혔다. 돌을 두 달 앞두고 혼자 서는 법을 익히지 못해 걱정하던 어느 날 갑자기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고, EBS에서 방송하는 ‘한글 용사 아이야’를 유심히 보더니 다섯 살에 혼자 한글을 읽기 시작했다. 자전거만큼은 나의 손을 타게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아이의 성장 고비를 스스로 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람이 기특하면서도 점점 내 손을 떠나는 아이가 아쉽다.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니 내가 두발자전거를 처음 탔던 때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남동생의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사주셨다. 주변 또래 남자아이들이 모두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며 동생 또한 자전거를 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동생은 몇 번 자전거를 타보더니 흥미를 잃었는지 자전거를 그대로 방치했다. 선물 받은 건 동생이었지만 정작 자전거를 타고 다닌 건 나였다. 당시 자주 놀던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친구들 사이에 끼기 위해 동생의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자전거를 잘 타는 친구가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뒤를 몇 번 잡아줬고 처음에는 보조 바퀴를 달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 두발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스스로 익혔다. 두발자전거를 움직이는 방법은 터득했지만, 커브를 돌때면 겁이 나서 방향을 바꿔야 하는 일이 생기면 자전거를 멈추고 발끝으로 자전거의 방향을 살살 돌린 후 다시 페달을 젓곤 했다. 어릴 적 자전거를 제대로 익히지 못해 어른이 되어서도 직진 활주만 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 자전거를 탈 줄 아냐고 물으면 “탈 줄 아는데 직진만 가능해요”라고 답하는 어른이 됐다.
자전거를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남편도 덩달아 자전거를 한 대 구입했다. 잠시 눈만 돌리면 사라지는 아이를 따라잡아 돌보기 위해서였다. 남편의 자전거지만 주중엔 내가 타고 다닐 일이 더 많다.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고 마는 아이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함께 타기 시작하면서 나의 자전거 실력이 늘었고 핸들 조작도, 커브도 돌 수 있는 자전거 잘 타는 어른이 되었다. 이제 누군가 자전거를 탈 줄 아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말한다. “네, 자전거 탈 줄 알아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많은 감정이 오간다. 그 감정의 더미 속에서 고비를 넘기며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작은 행복과 더불어 어느 순간 아이를 통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전거 타는 법을 익힌 아이를 보며 어린 날 나의 모습이 겹친다. 결국 어른의 도움 없이 혼자 자전거의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며 내가 느꼈던 성취감을 아이 또한 느끼고 있겠지. 나의 아쉬운 마음 너머 있는 아이의 기쁨을 헤아리며 내가 모든 시절을 잘 보내고 어른이 되었듯 아이도 스스로 잘 해낼 거란 믿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