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다정한 기억] 다정한 어른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는 따뜻함

by 겨울햇살


“큰외삼촌 팔순 잔치가 있다는데 너도 갈래?”


집에 들른 친정엄마가 문득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어릴 적 선택의 여지없이 참여해야 했던 집안 행사는 어른이 되며 선택의 영역으로 바뀌었다. 결혼 후엔 친척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물론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소속감마저 희미해졌다. 아이를 낳은 후엔 내가 챙겨야 할 가족의 영역이 양가 부모님으로 완전히 축소되었다. 나의 부재는 아이가 대신 채웠다. 칠 남매 중 막내인 엄마는 언니 오빠들이 이미 끝낸 손주 자랑이 뒤늦게 하고 싶으셨던지 종종 가족 행사에 아이를 데려가곤 하셨다. 이번에도 아이만 보내려다가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촌들이 온다는 소식에 평소와 다르게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팔순 잔치 당일 빈손으로 가도 되는지 고민하다가 봉투에 약간의 돈도 챙겨 길을 나섰다.


어릴 적 나는 친가보다는 외가와 더 가깝게 지냈다. 지리적으로 외가가 가까워 만남이 쉬웠고, 조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친가와 달리 외할머니가 팔십 후반까지 가족의 구심점 역할을 하신 것도 한몫했다. 명절과 제삿날이 되면 외갓집에 가곤 했는데 덕분에 어린 날의 추억 속에는 농사를 짓던 외갓집의 풍경과 분주히 오가던 친척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외갓집은 항상 시끌벅적했다. 칠 남매가 데려온 아이들이 모두 모이면 스무 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 한 집에 머물렀다. 친척 모임 속에서 나는 또래 사촌과 노는 법을 익혔고, 언니 오빠의 행동을 동경했으며, 어른들의 모습을 엿봤다.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친척 어른은 없었다. 꾸벅 인사하고 간단한 안부에 답하고 나면 할 말이 없어졌다. 넉살 좋게 어른들과 지내는 사촌 언니를 볼 때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외갓집에 있을 때면 마주하기 불편한 어른들을 피해 엄마의 뒤를 졸졸 따라다녀 친척 어른들께 한 소리를 듣기도 했다. 많은 인원 속에 특정한 인물과의 추억은 없지만 누군가는 나에게 다정했고 누군가는 나를 귀찮아했다는 느낌만은 남아있다.


아이를 낳고 진짜 어른이 되어 참석한 가족 모임에서 여전히 나는 살갑게 친척 어른들을 대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처럼 엄마 주변에 머물렀다. 아이를 챙겨야 한다는 핑계로 불편한 자리를 잠시 비우기도 하면서 말이다. 익숙한 얼굴들 사이에 있으니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지나간 세월이 그대로 묻어있는 친척 어른들의 나이 든 얼굴과 내 옆에 바짝 앉아 있는 아이의 존재가 시간의 흐름을 일깨워줬다. 모두 반가운 얼굴이었지만 조금 더 마음이 가고 반가운 분들이 있었다. 숫기 없는 어린 시절의 내가 알게 모르게 다정함을 느꼈던 분들이었다.

흘러간 시간은 많은 것을 바꿨지만 내 속에 남아있는 다정함의 힘은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이 어떤 형태의 다정함이었는지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가끔 건넨 말 한마디와 눈빛이 따뜻했었다고 어렴풋이 기억한다. 사람을 기억하는 건 거창한 추억이 아니라 다정한 추억 하나란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행사의 주인공이었던 팔순을 맞이한 큰외삼촌도 그런 분이셨다. 외할머니를 제외하고 가장 큰 어른이셨던 큰외삼촌은 말수가 없으신 편이다. 일가친척 모두가 모인 와중에도 농사일하신다고 집을 비우실 때가 많아 함께하는 순간이 적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 열 마디 말을 건네며 대화를 이어간 다른 어른보다 한마디 말만 건넨 큰외삼촌이 편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를 무시한다는 느낌보다는 배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외갓집엔 텔레비전이 세 대가 있었는데, 운이 좋으면 빈방을 차지하고 내가 보고 싶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 재밌게 보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들어온 어떤 어른은 자연스럽게 채널을 바꾸며 내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큰외삼촌은 보고 싶은 채널을 보라며 아무 말 없이 방문을 닫고 나가시거나 그냥 옆에 있어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받은 작은 배려들은 나이가 들어도 잊히지 않는다.


어른이 된 나는 내 주변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생각해 본다. 여전히 타인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하고 손 내밀지 않는 무심한 나의 성격을 떠올리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자신이 없어진다. 어른이 된 나에게 여전히 남은 어른들의 따뜻한 기억은 큰 배려나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어린아이의 철없는 행동을 질책 없이 바라보는 눈빛, 아이다움을 기다려주는 여유가 어린 나를 스스로 성장하게 했다. 내게 남아있는 다정함에 기대어 주변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하고 싶다. 다정한 어른의 따뜻함이 얼마나 오랫동안 마음에 남고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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