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다정한 기억] 휘파람과 핑거스냅

꾸준함의 힘

by 겨울햇살


“엄마, 휘파람 한 번 불어 봐”


아이의 여섯 살 가을 무렵 나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우연히 들은 휘파람 소리가 신기했던지 아이는 나를 비롯해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가까운 어른들과 마주할 때면 휘파람을 불어달라고 요청했다. 요청에 응해주는 어른의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자기 입에서 나는 희미한 소리와 어른의 입에서 나오는 선명한 휘파람 소리를 비교했다. 이래저래 입 모양을 유심히 봐도 방법을 알 수 없었던지 아이는 나에게 어떻게 소리를 내냐고 물어봤다. 사실 나도 공기 소리가 더 많이 나는 어설픈 휘파람을 부는 수준이라 자세히 알려줄 처지는 아니었지만 입을 오므린 후 입술 사이로 바람을 불어내면 된다고 알려줬다. 빈약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입을 오므리며 열심히 휘파람을 부는 흉내를 냈다. 아이와 함께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갈 때면 누가 더 휘파람을 잘 부나 시합을 하기도 했는데 한동안은 나의 승리로 끝났다.


시간이 흘러 일곱 살의 봄을 맞이한 어느 날, 아이의 입에서 선명한 휘파람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휘파람을 연습하더니 두 번의 계절이 흘러가는 사이 휘파람을 부는 방법을 스스로 익힌 거였다. 소리를 내는 것뿐만 아니라 가벼운 멜로디를 흥얼거릴 정도로 아이의 휘파람은 능숙해졌다. 이제 아이의 입에선 나보다 뚜렷한 소리가 나온다. 여전히 바람 소리 가득한 휘파람밖에 불지 못하는 나는 아이와의 휘파람 시합에서 매번 지고 만다. 휘파람을 성공한 후 아이가 도전한 다른 소리가 있다. 바로 엄지와 검지를 맞닿으며 내는 핑거 스냅이다. 어느 날 내가 아이 앞에서 핑거 스냅으로 소리를 냈더니 어떻게 하느냐 묻곤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직 내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손으로 손가락을 튕겨보지만, 휘파람보다 소리보다 내기 어려운지 곧 포기하고 말았다. 덕분에 휘파람 시합에서 꺾인 엄마의 위상을 핑거 스냅 시합을 통해 회복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핑거 스냅은 아이의 휘파람같이 어른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소리였다. 손짓만으로 나는 ‘딱, 딱’ 소리가 신기해 생각날 때마다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를 내는 연습을 했었다. 아직 말랑했던 어린 손에선 살 비비는 소리만 날 뿐이었지만 언젠가 어른처럼 멋진 소리를 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아이가 휘파람을 연습한 것처럼 수시로 손가락을 튕기다 보니 몇 년이 지나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으며 말랑한 손가락이 살이 좀 더 굳고 손끝에 힘이 생기며 소리가 짙어졌다. 한 번도 연습하지 않았던 휘파람 소리는 어른이 된 지금도 ‘쉬,쉬’거리는 바람 소리만 가득하지만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습한 핑거 스냅은 아직도 꽤 그럴듯한 소리를 낼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며 사람이 해내는 모든 일은 저절로 이뤄진 걸 아니란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앉는 것, 서는 것, 걷는 것 모두 저절로 된 것 같지만 실패하는 수많은 순간을 극복하고 해냄을 경험하는 감격의 시간이 있었다. 능숙해진 아이의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휘파람을 잘 부는 사람은 어릴 적 휘파람을 잘 불고 싶다는 마음을 간직하고 연습한 사람이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날 때가 있다. 자연스레 익힌 행동이라 여기는 휘파람이나 핑거 스냅 같은 작은 행동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 어른이 된 후에는 이 간단한 진실을 잊고 원하는 것이 빨리 이뤄지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닦달하며 자책하는 순간들과 자주 마주한다. 어른이 되어 좌절한 순간에는 결국 성공을 이룰 만큼의 노력이 따르지 않았던 경우가 많다. 해냄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진실을 마음에 새기며 올해의 목표에는 꾸준함을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뒀다. 소리 하나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했던 어린 날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원하는 것을 향한 반복의 힘을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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