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다정한기억] 수영

공포가 도전으로, 도전이 여유로

by 겨울햇살

바다는 두려움의 경계를 만들었다. 물속 세상은 빛이 차단된 채 숨 막히는 푸른빛을 뿜어냈다. 자유롭게 호흡할 수 없는 갑갑함, 땅에 닿지 못하고 흔들리는 발끝에서 오는 공포가 몸을 휘감았다. 허우적거릴수록 몸은 바다에 끌려가듯 가라앉았다. 물에 대한 공포가 시작된 날이었다.


중학교 삼 학년, 방학을 맞아 여름 캠프에 참여했다. 캠프의 여러 프로그램 중 내가 가장 기대한 것은 ‘제트보트 체험’이었다. 이전에 경험한 물놀이라곤 얕은 바닷가를 첨벙거리거나 튜브를 타고 둥둥 떠다니는 게 다였던 나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조를 짜서 제트보트를 타고 바다를 돈 후 해안가 근처의 바다에 빠진 후 수영을 해서 돌아오면 된다는 선생님의 안내가 이어졌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시원하게 바다를 가로지르는 제트보트의 속력을 즐긴 후 호기롭게 점프하여 바다에 풍덩 빠졌다. 자연스럽게 물 밖으로 나와 아무렇지 않은 듯 수영을 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점프 후 내가 만난 건 시야를 막는 바다의 어둠과 입과 코로 흘러 들어오는 짜디짠 바닷물이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음에도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두려움은 어마어마했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태어나 처음 느끼며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고 그럴수록 몸은 무거워졌다.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겨우 물 밖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그 후 내게 물은 공포의 대상이 됐다.


한동안 물을 멀리하며 지냈다. 몸을 의지할 수단이 없으면 발이 닿지 않는 물 특히 바다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물에 빠뜨리는 장난은 내가 가장 질색하는 행동이었다. 바다 가까운 곳에 살았지만 바다는 관상용에 불과했다. 그렇게 물을 피해 오던 내게 어이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스노클링을 할 일이 생겼다. 대학 시절 태국을 여행하다 즉흥적으로 ‘꼬창’이라는 섬에 가게 됐다. 급하게 카오산로드에서 비키니를 하나 샀고, 긴 시간 버스를 타고 가 꼬창에 내리자마자 동행인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스노클링 투어를 예약했다. 사실 나는 스노클링이 뭔지도 몰랐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몰랐기에 가능한 일정이었다. 구명조끼를 입었지만 여전히 바다는 무서웠고 배에 탄 사람 중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날 배에 같이 탄 사람들의 반 이상은 서양인이었는데 자유롭게 바다를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 무서워하는 내 모습이 안 되어 보였는지 가이드가 나를 이끌고 바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각 포인트를 알려줬다. 그때 본 산호초와 물고기들의 모습은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내 손을 잡고 이끌던 낯선 이방인의 촉감은 그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때 마음속 작은 결심이 피어올랐다. 수영을 배우겠다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바닷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목격하고, 나와 달리 여유롭게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꼬창.jpg 스노클링을 하고 돌아오던 길의 꼬창 바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업이 되지 않아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불안 속에 찾아온 여유는 오래 묵은 마음속 각오를 불러일으켰다. 아무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던 방황기에 뭐라도 하나 이뤄내 나의 유용성을 입증하고 싶은 마음으로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요즘과 달리 수강 등록이 치열하지 않던 시기라 동네 국민체육센터의 수영 수업을 바로 등록할 수 있었다. 수업 첫날 물에 뜰 수 있냐는 강사의 질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답했다. 몸에 힘을 빼고 무릎을 양팔로 감싸 안아 보라는 강사의 말에 천천히 동작을 따라 했다. 그간의 두려움이 무색하게 몸이 떠올랐다. 발버둥 치지 않고 몸에 힘을 빼는 것만으로도 몸은 물에 떴고 더 이상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자유형, 배영을 배웠고 평영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취업이 결정됐다.


수영을 배운 후 스노클링을 두 차례 더 했고, 다이빙을 체험할 수 있는 용기까지 생겼다. 바다의 고요함이 아직 신비롭기보다 두렵지만 그 매력이 무엇인지 어설프게 감은 온다. 수영을 그만둔 지 거의 십여 년 만에 요즘 다시 수영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흐트러진 각 영법의 자세를 다시 잡고, 배우다 만 접영을 제대로 익혀나가고 있다. 십 대의 물이 공포, 이십 대의 물이 도전이었다면 삼십 대가 되어 다시 들어간 물은 여유로 다가왔다. 새로운 것을 배워나간다는 느낌보다 알고 있는 것을 정확하고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은 불안하기보다 즐겁다. 수영을 배우며 두렵다고 느끼는 그 어떤 것도 방법을 알면 즐거움으로 둘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지난 주말에는 혼자 자유 수영을 가서 숨이 차도록 수영을 했다. 씻고 나오니 양 볼이 빨개져 있었다. 죽을 것 같았던 물속의 버둥거림이 수영 동작으로 바뀌었고, 호흡의 두려움은 심장을 뛰게 하는 벅참으로 다가왔다. 지금 나를 두렵게 하는 어떤 일도 즐거움을 바뀔 수 있음을 다시 돌아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게 다정한 기억] 휘파람과 핑거스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