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다정한 기억] 환상의 탕수육

부먹을 먹던 어린이의 속마음

by 겨울햇살

어릴 적 ‘탕수육’은 나의 별미 중 하나였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기에 우리 가족은 외식은커녕 배달 음식을 먹는 일도 드물었다. 저녁상의 단골 메뉴는 된장찌개, 김치찌개처럼 값싼 재료로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음식이었다. 월급날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주메뉴는 통닭과 탕수육이었다. 통닭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면 탕수육은 분기별로 먹을 수 있는 더 귀한 음식이었다.


아빠가 동네 중국집에 탕수육을 주문하고 나면 어린 나에겐 설렘의 시간이 다가왔다. 배달이 도착할 시간이 되면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복도식 아파트 삼 층에 살았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면 아파트를 향해 배달 오토바이가 달려오는 소리, 복도로 배달원이 걸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탕수육이었건만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뭐가 부끄러웠는지 동생과 나는 방에 들어가 숨어있었다. 현관으로 들어온 배달원이 철가방을 열고 음식을 꺼내면 집안으로 고소한 튀김 냄새가 퍼져나갔다.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방에서 나와 침을 꿀꺽 삼키며 입구에 있는 음식들을 거실 테이블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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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 도착과 함께 내겐 성취해야 할 중요한 미션이 있었다. 탕수육 튀김을 덮고 있는 랩을 모두 제거할 마음의 여유도 없이 접시 한 귀퉁이의 랩을 뜯고 그 사이로 바삭한 튀김을 맛보는 잠깐의 시간, 바로 그렇게도 기다렸던 탕수육과 내가 만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부모님은 탕수육 소스를 튀김에 부어 먹는, 이른바 ‘탕수육 부먹’을 선호하셨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 탕수육 소스를 고기튀김에 붓기 전 튀김의 바삭한 맛을 재빨리 음미해야 했다. 소스를 붓기 전 짧은 찰나에 바삭한 탕수육 튀김을 골라 간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소스에 찍어 먹기도 했는데, 마치 몰래 음식을 먹는 사람처럼 마음이 조급했다. 소스를 튀김에 다 부어버리면 그나마 소스가 덜 묻은 튀김 조각을 찾아 먹었다. 나는 소스를 부어 튀김옷이 부드러워지는 것보다 바삭한 상태에서 소스 혹은 간장만 찍어 먹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어릴 적 부모님의 모습을 통해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 게 당연한 규칙이라 생각했고 이외의 방식으로 탕수육을 먹어본 적이 없기에 나의 기호가 별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식성을 숨기며 지내오길 십여 년, 내가 알던 소스를 부어 먹는 탕수육 부먹파가 모두의 기호가 아니며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는 찍먹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됐다. 어느새 탕수육 부먹파와 찍먹파의 양립은 대화의 가벼운 주제가 될 정도로 일반적인 사실로 퍼졌다. 그리고 찍먹파를 고려하지 않고 소스를 부어버리는 건 배려가 부족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로 이제 세상은 다양한 방식을 인정한다. 어쩌다 보니 내 주변엔 모두 부먹파만 있었던 것이지 세상은 나와 같은 기호를 가진 사람 또한 많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나는 탕수육 찍먹파를 자청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 귀하게 여겼던 탕수육은 이제 한 달에 두세 번 먹을 일이 생길 정도로 흔한 음식이 됐고, 내 취향대로 먹을 자유도 생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기호를 인정하고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세상 속에 살게 된 모습을 돌아보면 새삼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탕수육을 먹을 때면 취향대로 먹는 현재의 기쁨보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탕수육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의 설렘 그리고 내 취향에 맞는 한 조각의 튀김이 입속에 들어왔을 때 작은 환희를 느끼던 어릴 적 순간이 이제는 환상처럼 느껴진다. 탕수육에 대한 어린 시절의 향수는 원하는 대로 먹지 못한 섭섭함보다 가족과 도란도란 모여 앉아 별미로 즐겼던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탕수육은 이제 내게 기호의 문제가 아닌 추억이 깃든 음식이 됐다. 탕수육을 먹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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