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워야 보이는 벚꽃의 아름다움
꽃이 참 예쁘다.
꽃이 예뻐 보이면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는데, 늘어난 내 나이엔 애써 등을 돌리면서도 꽃이 예쁘단 단순한 감정만큼은 도무지 부정할 수 없다.
‘수고했다’ 외치던 연말 분위기에 빠져나오지 못한 채 분주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계절이 바뀌고 봄을 느낄 때 비로소 한 해가 바뀌었음을 제대로 체감한다. 열심히 살라 격려하는 봄의 기운은 오히려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삼월 내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응달엔 벚꽃 필 무렵이 되면 서서히 빛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이름만 봄이었던 삼월의 차가운 기운이 수그러들면, 때를 기다렸던 것처럼 세상의 색이 바뀐다. 겨울 내내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작은 망울들이 생기더니 어느 순간 연분홍 꽃들이 활짝 피며 세상이 화사한 색으로 물든다. 벚꽃이 피자 그늘진 마음에 온기가 스며들며 사르르 마음이 녹는다. 꽃 하나 폈다고 이렇게 마음이 설렐 일인가 싶다. 꽃다발보다 현금이 낫다던 어린 날의 내가 지금 모습을 본다면 코웃음 칠 것이다.
결혼 전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이십 년을 넘게 산 친정 근처에는 벚나무가 가득했다. 아파트를 지을 때 심은 나무들이니 그곳에 살며 마주한 봄 내내 꽃을 피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시절 만개한 벚나무들을 마주한 기억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던 추억은 있지만 놀이터 근처에서 분명히 꽃을 피웠을 벚나무는 기억나지 않는다. 감수성 넘치던 고등학교 시절 교정의 벚나무 아래에서 동아리 친구들과 찍은 사진은 남아있지만, 벚꽃을 보며 설레던 추억은 없다. 흐드러진 벚꽃의 아름다움보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더 신경을 빼앗겼던 시기였다. 하루 종일 갖가지 공상에 빠져 살았으니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찬란하게 반짝였던 시기였지만 그 시기의 나는 하루가 지루했고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벚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스무 살부터였다. 나에게 스무 살의 봄은 혼동의 시기였다. 아직 내가 열여덟 같다는 기분에 빠져 나에게 주어진 많은 것들을 부정했다. 지나간 시절에 미련을 갖자 꽃이 눈에 들어왔다. 이후 직장인이 된 나는 벚꽃 열광자가 되었다. 봄이 오면 벚꽃이 피길 기다리고, 평일 낮의 벚꽃을 즐기지 못함을 친구와 한탄하며 퇴근 후라도 벚꽃 명소에 찾아가고, 꽃이 질세라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여전히 하루는 지루했지만 정신을 차리면 달이 바뀌어있던 시절이었다. 다가올 서른을 두려워하며 이십 대가 끝나감을 아쉬워했다. 지난날이 그립고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워지자 비로소 꽃이 보였다. 짧게 피고 사라지는 꽃의 모습이 아쉬운 나의 청춘 같아 마음이 애달팠다. 느리게 흘러가던 인생의 시간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는 사람들의 시간을 ‘시간의 꽃’으로 표현한다. 회색 신사들은 속임수를 써서 사람들의 시간을 뺏고, 꽃잎으로 만든 시가를 피워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은 견딜 수 없는 지루함에 빠져 살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 꽃으로 형상화되며 독자는 시각적으로 시간을 경험한다. <모모>속 시간의 꽃처럼 벚꽃이 피면 나는 봄의 한 가운데 서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현재보다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지금 내 모습보다 휴대폰 사진첩에 저장된 몇 년 전 내가 더 가까운 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큰 변화 없는 어른의 삶을 살면 현재를 놓치는 일상이 쌓여간다. 아직도 어린 내 아이를 옆에 두고, 아이의 더 어린 시절의 사진 속에 빠져 과거를 그리워할 때도 많다. 몇 년 전 모습이 실제 나같고 나이 든 내 모습은 부정하고 싶은 거짓처럼 느껴진다.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고 습관적으로 하루를 살아가다가도, 벚꽃이 피면 시기만큼은 특별해진다. 지나간 날에 빠져 살던 나도 이 순간만큼은 오늘의 벚꽃을 즐기기 위해 사는 느낌이다. 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벚꽃을 마주하고, 꽃잎이 날리는 순간까지 목도하면 비로소 내 인생의 또 한 번의 벚꽃이 저물어감을 실감한다. 꽃이 피고 지는 찰나 순간은 마치 내가 놓치고 사는 인생과 닮아있다. 벚꽃은 과거를 아쉬워 말고 지금을 즐기라는 신호 같다. 아쉬울 게 없어 어린 날엔 몰랐던 미련이라는 감정 속에서 벚꽃은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