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다정한 기억] 엄마 키가 작아졌다

줄어든 엄마 키

by 겨울햇살

“키가 작아졌더라. 건강검진에서 159가 나왔어.”

“나이 들면 키가 줄어든다는데, 이제 엄마도 할머니 다 됐나 봐.”

“원래 162, 163 정도 됐거든. 3센티미터 이상 줄어들면 몸 어딘가가 굽은 거라던데….”


손주를 보기 위해 집에 들른 엄마를 배웅하는 길이었다. 손주가 세상 최고인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온다. 어쩌다 한 주를 거르게 되면 한 달은 못 본 것처럼 아쉬워한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도 모르고 아이는 게임을 할 수 있는 할머니의 휴대폰이 가장 반갑다. 오늘도 게임에만 집중하는 손주를 바라보다 엄마는 집으로 향한다. 할머니의 지독한 짝사랑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엄마와 나란히 서 있으니 엄마가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키가 줄어들었다고. 줄어든 키에 대해 나이 들며 겪는 당연한 현상이라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이미 느끼고 있던 엄마의 굽은 허리에 대해선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59년 돼지띠인 엄마는 비슷한 연배에선 키가 큰 편에 속한다. 친구분들과 함께 찍은 여행 사진을 봐도 엄마의 머리는 항상 한 뼘 정도 위에 올라와 있다. 평균보다 키가 큰 엄마와 달리 나는 작은 편에 속한다. 부모님 두 분의 키가 평균치를 넘고, 남동생은 180센티미터가 넘는데 나만 평균에 도달하지 못했다. 160센티미터가 되지 못하고 멈춘 내 키를 엄마는 아직도 아쉬워한다. 성장이 거의 멈춘 고등학교 때부터 엄마는 말버릇처럼 엄마 키와 내 키가 바뀌면 좋을 거라 말했다. 엄마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가 5센티미만 더 컸으면 이 남자 저 남자 다 사귀고 더 잘 나갔을 거란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키가 문제가 아닐 텐데 엄마는 항상 키 탓으로 돌렸다.


엄마는 키가 큰 만큼 옷맵시도 좋은 편이다. 꾸미는 것도 좋아해서 벨트, 스카프, 브로치 같은 악세서리도 잘 활용했다. 특별한 모임에 입는 원피스는 특히 잘 어울렸다. 어릴 적 엄마의 원피스를 입고, 벨트를 매고, 액세서리를 한 다음 신발장에서 구두까지 꺼내 신으며 엄마 흉내를 내기도 했다. 엄마의 신발과 옷이 내가 어른이 되어도 내게 클 줄은 모른 채.

기억 속 엄마는 자신만의 멋이 있는 세련된 어른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환갑이 훌쩍 넘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시장 식당 일은 예쁜 옷보다는 실용성을 우선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며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 하루하루 피곤한 삶 속에서 패션까지 신경 쓸 여유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 내 옷차림을 볼 때면 ‘그 옷은 입지 말라’며 조언 아닌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시장에서 내 옷을 사다 주기도 한다. 내 나이가 몇인데 말이다.


엄마와 나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다. 식성도 취향도 다르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고등학생이 되고서야 돼지국밥을 처음 먹어봤다. 이 맛있는 걸 왜 여태껏 먹지 못했을까 싶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 엄마가 국밥을 좋아하지 않아 덩달아 나도 먹을 기회가 없었단 걸 알게 됐다. 매운 걸 좋아하는 나와 달리 엄마는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 엄마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음식을 주문할 때 어쩔 수 없이 순한 맛을 골라야 한다. 좋아하는 활동도 다르다. 나는 스포츠 댄스를 취미로 배우던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고, 엄마는 클래식 공연에 다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니 심리적 거리까지 멀어졌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여러 미신을 꼭 지켜야 하듯 말할 때면 반감이 들었다. 엄마가 하는 육아 조언은 언제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이 많은 엄마와 나였다.



점점 더 달라지기만 할 것 같았던 둘 사이에 어느 날 비슷한 점이 생겼다. 시간이 흐르며 줄어든 엄마의 키는 어느새 나와 비슷해졌다. 항상 나보다 한 뼘이 컸던 엄마와 눈높이가 비슷해지자 흘러간 세월이 실감나는 엄마의 모습이 더 잘 보인다. 이제 엄마와 나는 서로의 노화를 걱정한다. 출산 후 가늘어진 머리카락 때문에 예전보다 빈 내 정수리를 보며 엄마가 더 애달파하고, 나는 엄마의 굽어버린 허리를 걱정한다. 허리를 보면 이제는 그만 일했으면 싶지만 한 달 벌이가 사라지면 불안해할 엄마를 알기에 말을 꺼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엄마에게 문이 닫히기 전 손을 흔든다. ‘조심히 가’란 말도 빼먹지 않는다.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손주가 보고 싶은 엄마는 매주 한 번은 우리 집에 온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같은 대상을 사랑하는 것도 처음이다. 언제나 다를 것 같았던 엄마와 내가 점점 닮아간다. 엄마의 키가 줄어들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나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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