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앞세우고 싶었던 마음
올해 초,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서울 이전이 결정됐다. 부산에서 서울, 우리가 가족을 이루고 맞이한 가장 큰 변화였다. 당장 거주지를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한동안 주말부부로 지낸 후 이 년 안에 남편의 직장까지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에 이사하기로 뜻을 모았다. 가장 큰 문제는 집이었다. 우리가 가진 예산에 부합하고 아이와 함께 적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집은 평수를 줄이고 대출을 늘려야만 가능했다. 늘어날 대출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금 하는 프리랜서 일이 아닌 고정적인 수입을 낼 수 있는 일이 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심 변화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설렜다. 부산을 떠나본 적이 없는 내게 서울 생활은 새로운 기회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교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공연과 전시를 좋아하는 내게 서울에서 접할 수 있는 문화적 자극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가끔 서울에 갈 때 느끼던 ‘중심의 삶’이 손만 뻗으면 누릴 수 있는 일상이 되는 상상에 빠졌다.
내 기대와 달리 남편은 다가올 변화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언제나 조용한 시골에서 한적하게 일하고 싶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남편에게 서울은 각박한 곳이었다. 연고지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구체화되자, 피할 수 없는 무게가 남편의 심경을 변화시켰다. 때마침 조건이 나쁘지 않은 이직 제안이 왔고, ‘한 번 해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채용 절차 끝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나도 동의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종 합격 소식을 전해 들은 순간 기쁨보다는 갑갑함이 앞섰다. 이직은 여러 측면에서 남편의 커리어에 좋은 선택이었다. 다만 그 회사가 지금 사는 곳과 이백오십 킬로미터가 떨어진, 인구 십만 명이 되지 않는 소도시에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한 달 동안 일어난 급작스러운 변화에 어안이 벙벙했다. 평생직장이라 생각하며 한 회사를 십 년 넘게 다닌 남편이 마음을 돌리자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소도시의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 내내 틈만 나면 지도를 보며 예상치 못한 소도시의 생활을 상상했다. 소도시 생활이 주는 한적함과 새로운 장소에서 펼쳐질 재미가 그려졌다. 하지만 아이를 위한 대형학원도 없고, 백화점은커녕 마트도 시를 통틀어 하나뿐이며, 문화생활을 할만한 곳은 백 킬로미터 넘게 떨어져 있었다. 병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사소하게는 당연하게 여긴 새벽 배송 서비스도 불가능했다. 이전에 꿈꿔왔던 서울 생활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내 마음과 달리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이직을 통해 늘어날 수입은 남편에게 상징적인 숫자였고, 길게 봤을 때 우리가 목돈을 마련할 좋은 기회였다. 아이도 이사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미리 가본 소도시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언제 이사 가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이 변화가 달갑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의 말 한마디면 없던 일이 될 수 있었다. 남편은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이직하지 않겠다며 재차 의견을 물었지만, 남편의 커리어에도, 우리 가족의 경제적 여유에도 도움이 되는 이직을 반대할 명분이 내겐 없었다. 이직하지 않았을 때 닥쳐올 서울살이의 고단함을 남편은 묵묵히 견뎌내겠지만 그 모습을 보며 내가 감당해야 할 후회의 무게가 두려웠다. 이 기회를 포기하는 건 나의 사소한 이기심인 것 같았다.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지만 불확실성에 기대를 걸 순 없었다. 서울살이의 고단함은 나의 책임으로 연결되지만, 소도시 생활의 불편함은 남편의 책임이자 나의 희생으로 돌릴 수 있다는 비겁한 마음도 들었다.
이직을 받아들이고 나니,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이란 사실이 가장 허망했다. 아직 건강하신 부모님은 큰 걱정이 되지 않았고, 하고 있던 일은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부산에서 만난 인연도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되지 못했다. 만약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직장이나 수입이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란 가정이 생각을 지배했다. 내 삶이 남편의 이직만으로 이렇게나 쉽게 흔들릴 수 있음을 느끼며, 나의 주체성이라 느꼈던 것들이 결국 남편에 기대어 가능했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나의 무기력해지는 마음을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포장하며, 용기 내지 못했던 마음속 열망들을 아래로 눌렀다.
살아온 날을 돌아보니 평생 뭔가 이루고 증명하기 위해 버둥거린 내 모습이 보였다. 해내야 한다는 마음은 나를 항상 옥죄었다. 주부의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내가 해내지 못하는 것들을 이뤄가는 남편의 모습은 나의 훈장 같았다. 내가 아이를 보는 동안 남편은 대학원을 다녔고, 승진을 했고, 회사에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주변에서는 남편의 성과가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뒷바라지 한 나의 덕이라 말하기도 했다. 신파적인 위로 한마디에 모난 내 마음을 정당화했다. 아이가 자란 후 나도 일을 작게 시작하긴 했지만, 집에 일이 생기면 내 일은 뒷전이 됐다. 오랜만에 나간 모임에서 자랑처럼 남편 이야기를 늘어놓고 돌아오는 길엔 내뱉은 말들이 부끄러워졌다. 내 것도 아닌 것을 자랑이랍시고 내세운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세상에 맞서기보다는 궂은일을 피하려는 용기 없는 내 마음은 언제나 숨기 바빴다.
소도시 생활이 새로운 현실로 다가오자 서울 생활을 기대한 내 마음의 진실이 보였다. 팍팍한 서울 생활에 나를 내던지면 숨어있던 마음의 불씨가 다시 타오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속에 나를 몰아붙이며 동력을 얻으려 했다. 자발적인 도전이 아닌 상황의 흐름에 나를 맡기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나를 부추기고 싶었다. 남편과 아이의 뒷바라지를 핑계로 뒤에 숨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유로 나를 앞세우고 싶었다. 누군가에겐 배부른 소리일 것이다.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괴로운지도 그려진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나의 쓸모를 증명함을 꿈꿨다.
남편은 새로운 직장의 출근을 앞두고 있다. 그곳 또한 서울처럼 연고가 없는 곳이라 우선은 주말부부로 지내다 아이의 학년이 바뀔 때 이사 가기로 정했다. 마음의 물길을 다른 쪽으로 바꿔 소도시의 삶의 장점을 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직 감은 안 오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