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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주부의일상] 엄마들의 약속

쉽게 깨지는 우리의 약속

by 겨울햇살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기로 했다. 삼 년 만이었다. 좋아하는 것과 공감하는 부분이 비슷해 오랜만에 만나도 할 말이 많고 마음이 편한 친구다. 친구가 사는 동네 도서관에 수업을 들을 일이 생겨 이 주 전에 미리 연락해 약속을 정했다. 약속 전날 친구와 함께 연락을 주고받으며 함께 갈 식당, 식사 후 갈 카페까지 정했다.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이 마음 한가득 쌓여있었다. 인스타그램 사진으로만 보던 서로의 근황을 확인하고, 공통분모가 겹치는 관심사까지, 할 이야기가 넘쳐났다. 내 일정과 친구의 초등학생 딸 하교 시간 때문에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약 세 시간. 오랜만의 조우에 세 시간은 너무 짧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친구를 만나는 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급하게 집을 정리한 후 나름 꽃단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차에 시동을 건 후 경로를 확인하니 친구 집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 먼 거리에 사는 것도 아닌데 참 보기 힘들다 싶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예상 도착시간을 알려주며 곧 만나자 말했다. 오늘의 메뉴는 콩국수와 철판 볶음밥. 후기를 보니 무척 맛있어 보여 일부러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하는 길이었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들으며 요리조리 차선을 바꿔가며 도착시간을 당겨보려 애썼다. 출발 십여 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쩌지, 학교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이 배가 아프다네.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오후에 수업 때문에 친구 동네에 가야 하니, 혹시나 아이 상태가 괜찮아지면 커피라도 마시자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내비게이션의 경로를 집으로 수정했다. 집에 오자마자 냄비에 물을 올리고 라면을 끓였다. 콩국수 대신 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늦은 만남이 가능할까 싶어 아침마다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를 참았다. 시간은 흘러갔고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이미 넘겨버렸다. 수업 시간에 맞춰 집을 다시 나섰다.

수업을 마칠 무렵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정신이 없어 이제야 연락한다며 약속이 깨져 아쉽다는 메시지였다. 나도 만나지 못한 아쉬움과 아이에 대한 걱정을 표로 하며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엄마들의 만남은 아이 때문에 쉽게 취소되곤 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콧물’이 주된 이유였다. 아이의 콧물이 흐르면 상대방 아이에게 감기를 옮길 우려가 있다며 약속은 취소로 이어졌다. 아이의 상태를 미리 말하고 상대방이 괜찮다고 동의하면 약속이 유지되기도 한다. 하지만 콧물 흐르는 아이의 엄마는 만남 내내 아이를 더욱 신경 써야 했다. 아이가 좀 더 크고 나서는 온갖 병이 사유가 됐다. 갑작스러운 고열, 얘기치 않은 상처, 불안한 기운에 병원에 갔다가 진단받은 폐렴이나 전염병 등 이유는 다양했다.


운이 좋게도 내 아이는 자주 아프지 않아 나는 주로 약속 취소를 당하는 쪽이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의 쉽게 가시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때론 엄마만 아이를 온전히 책임져야만 하는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약속 불참의 당연한 이유가 되는 엄마들의 암묵적인 동의 속에서 숨이 막힐 때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약속이 취소되는 패턴에 익숙해져 예사롭지 않은 일이 되었지만, 아이가 아파 나갈 수 없다는 약속 시간 직전의 연락은 힘을 빠지게 한다.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이에게 생기는 변수에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건 전업주부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다른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나만 희생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내 일정 혹은 주변 사람들의 일정을 조정하기 위해 종종거려야 하는 워킹맘들에 비하면 한층 홀가분한 상태다. 하지만 언제나 아이의 대기조가 되어야만 하는 상황은 마치 나의 존재가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한다. 늘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은 대역만 하다 주연 무대에는 오르지 못하는 무명 배우가 된 기분이 든다. 이런 상황은 끊임없이 다른 무언가가 되고 싶은 내 마음을 꺾는다. 그렇게 작아진 나는 아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나를 변화시킬 일들을 회피한다. 시간이 흘러 아이에게 더 이상 내가 필요 없고, 나를 막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을 때 여전히 나는 꺾인 마음이 익숙한 사람일까 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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