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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May 08. 2022

노동자들의 잃어버린 쉴 권리

내 연차휴가 어디로 갔어?!

 “이번에 용역업체가 바뀌어요. 관리사무소에서 올해는 연차수당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인가요? 왜 그런거죠?”


 작년 말 고용노동부가 연차휴가에 대한 행정해석을 변경하면서 용역업체에서 일하시는 노동자들의 문의가 많았다. 


 근로기준법 제60조 제1항은 “사용자는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1년의 근무를 하고 나면 보통 다음해에 15일의 연차휴가를 쓸 수 있고, 이를 1년간 다 쓰지 못했을 경우에는 쓰지 못한 휴가를 수당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딱 1년만 근무한 노동자가 퇴직한다면 어떻게 될까? 15일의 유급휴가를 수당으로 바로 받을 수 있는 것일까? 1년 미만일 때 사용할 수 있는 연차 11일까지 합쳐서 26일치의 연차수당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일까? 대법원은 “연차휴가를 사용할 권리는 다른 특별한 정함이 없는 한 그 전년도 1년간의 근로를 마친 다음 날 발생한다고 보아야 하므로, 그 전에 퇴직 등으로 근로관계가 종료한 경우에는 연차휴가를 사용할 권리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연차휴가수당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1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는 그 다음날의 근로가 없으니 15일의 연차휴가가 발생하지 않았고, 휴가를 사용할 권리에 대한 보상으로서 연차휴가수당도 없다는 것이다. 1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에게 부여될 연차휴가일수는 최대 11일이고 그 수당만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대법원 2021. 10. 14.선고, 2021다227100, 판결 참조)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1년의 근로를 마치고 바로 퇴직하는 경우에는 연차를 사용할 수는 없지만, 최대 26일치의 연차수당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해석해왔다. 그러다 위 대법원 판결이 있은 후인 2021. 12. 해석을 변경하면서 “1년간 근로관계가 존속하고, 80%이상 출근해도, 그 1년의 근로를 마친 다음날(366일째) 근로관계가 있어야 15일의 연차가 발생하고, 퇴직에 따른 연차 미사용 수당도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을 변경하였다.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 변경은 현장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고, 1년 단위로 고용이 단절되는 노동자들이나 매년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노동자들이 마지막 해의 연차수당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는 딱 1년만 근무한 경우에는 퇴직금도 없다는 오해까지 있었다.(혹시나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오해하실까 당부드린다면, 노동자가 딱 1년만 일한 경우에도 사업주는 퇴직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대법원의 판결문과 근로기준법을 읽어보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1년의 근무 그 다음날 발생한다는 연차휴가가 발생하지 못한 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제시했던 1년간의 근로계약 또는 원청의 용역계약기간 때문이지 그건 노동자의 선택이 아니지 않은가? 연차휴가는 과연 고용노동부나 법원이 말하는 것처럼 ‘1년의 근로에 대한 대가’이고 ‘보상’인 걸까? 그것은 그에 앞서 노동자의 쉴 권리 아닐까? 1년에 적어도 15일의 쉴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근로기준법은 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쉴 권리이든 보상이든, 사용자가 고의적이고 일방적으로 정한 단기의 근로계약기간으로 인해 노동자가 법이 정한 휴가를 사용하지 못했다면 그 손해에 대한 보상은 사업주가 마땅히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휴식 또한 노동자의 권리라면, 이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줘야할까? 


 한국이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는 ILO 연차유급휴가에 관한 제132호 협약(1970년)은 1년에 21일의 연차휴가를 사용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휴가 발생 요건으로 근속기간을 두고 있지만 그 기간은 6개월을 넘길 수 없다. 또 1년을 다 근무하지 못하더라도 그 기간에 비례해서 연차휴가를 부여해야 한다. 1년의 근무기간 동안 결근 등을 했는지 출근율을 따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만근여부와 출근율을 요구하고 휴가일수 또한 적다. 국제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쉴 권리가 아니라 ‘대가’나 ‘보상’이 되어버린 연차휴가가, 장기간의 휴식권이라는 원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될지 제도의 개편을 고민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 위 글은 부산노동권익센터 이슈페이퍼 8호(2022. 4.)에 실은 글입니다.

http://bslabors.or.kr/bbs/board.php?bo_table=pd_b&wr_id=80






* 휴가에 대한 가장 인상 깊은 기록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음 침공은 어디?>입니다. 꼭 한번 보시길 바래요.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4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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