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적당하고 안정적인 나의 30대
나에게 취향(趣向)이라는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어렸을 적부터 나는 모범, 성실 그리고 평범이라는 범주 내에서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30대를 맞이 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스무 살이었던 내가 기대한 30대를 만족하려면 적어도 지그 즈음 나는 웬만한 브이로그 감성을 지닌 나만의 공간, 대리나 과장급의 커리어 경력, 그리고 미래를 함께할 배우자 또는 예비 배우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굉장히 다르다.”
현재 나는 7개월 차 신입 그래픽 디자이너로 미국의 패션 테크 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의 괜찮은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뉴욕 브루클린에서 4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미래를 함께할 배우자 또는 예비 배우자도 없다.
어떻게 하다가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를 스스로 물어본다면 아마도 2018년, 스물여덟이 되는 해가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지 않을까 싶다. 4년 차 회사생활을 마무리하고 2018년 8월 19일, 한국 유통업계 대기업을 퇴사했다. 아무런 준비 없는 우발적 퇴사가 아닌 1년 전부터 준비한 계획적 퇴사였다. 퇴사 이유는 간단했다. 취향을 갖고 싶었다.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지?’ 할 수도 있지만, 나만의 취향, 나만의 무언가를 지니고 싶었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렸을 적부터 난 참 성실했고 감사하게도 그 성실함과 큰 운 덕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과 동시에 남들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그때만 해도 스무 살인 내가 상상하던 30대가 곧 올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첫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우리나라 유통업을 이끄는 3사 중 하나였고, 나는 영업관리 직군으로 입사를 했다. 유통업에 대해 관심이 크게 있거나 유통업과 밀접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대단한 안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주변을 둘러보니 취업준비 아니면 고시 준비, 둘 중 하나였다. 공부는 그만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취업 준비였고, 수십 개의 자기소개서와 입사지원서를 낸 끝에 딱 한 곳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유통업에 대해서 아는 것이 1도 없었지만, 그 당시 문과 졸업생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결과 중 상당한 쾌거였고, 큰 고민 없이 입사를 결정했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여기 말고는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회사 규정 상, 모든 신입사원은 지원한 부서와 상관없이 첫 1년은 본사가 아닌 현장으로 파견되어 한 장르의 영업관리직을 맡게 되는데 나는 여성 패션으로 발령이 났다. 해당 장르의 브랜드 매출, 현장 및 고객 서비스 관리가 주된 업무였고, 첫 회사 생활이었던 만큼 모든지 열심히 했다.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주말과 연차 없이 일을 했고, 동기와 선배들과의 사회생활에도 적극적이었다. 극강 I 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나기를 E인 것처럼 사회생활을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현장에서 일 한지 1년이 넘었고 나름 업무가 익숙해질 때 즈음, 본사로 발령이 났다.
이번엔 기업의 전체적인 브랜딩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팀이었고, 다시 신입 때처럼,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팀 문화에 적응하는데 내 시간과 에너지를 다했다. 그렇게 본사에서 또 1년이 흘렀고, 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 2년 반이 넘어갈 무렵, 모든 것들이 안정해지기 시작했다. 회사에서의 내 위치, 동료들과의 관계, 그리고 꽤 괜찮은 워라밸. 회사마다 다르고 팀마다 다르겠지만, 매일 야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월급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퇴근하고 친구와 술 한잔을 하거나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주말에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 삶의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적당했다.”
드디어 스무 살인 내가 그리던 30대에 도달할 수 있는 발판이 잘 마련되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내가 막상 계획했던 그림이 그려지니, 좋다기보다 두려웠다. 딱히 반갑지 않았다. 내 주변의 상황들이 안정될수록 나는 불안정했고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춘기 때 걸려야 했을 중2병이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걸린 건지. 이 불안감은 대체 어디서 오는지 종 잡을 수 없었다. 남들이 보면 다들 먹고살기 바쁜데 혼자 배부른 소리 한다고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원인 모를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심리상태는 몸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보통 때처럼, 퇴근 버스 안에 앉아서 집에 가고 있는 길에 갑자기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터질 듯한 느낌이 들었고, 답답하게 조여왔다.
“내 첫 공황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