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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Jul 20. 2022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그림 그리는 대기업 직장인 3년차

나의 비밀 퇴사 작전이 드디어 시작됐다.

“좋은데요? 색도 과감하게 잘 쓰네요."


선생님은 이렇게 한마디를 건네셨고 난 이미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내심 테스트를 통과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쓸데없는 불안감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좋은데요라는 말 한마디에 나는 이미 상상 속에서 미국행 편도 비행기 표를 끊어버렸다. 2017년 스물일곱이 시작되던 해, 나의 비밀 퇴사 작전이 드디어 시작됐다.


나의 작전은 간단했다. 12월 말까지 미국 디자인 스쿨 입학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완성하여 2018년 9월 가을학기 입학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물론 회사를 병행하는 것은 당연했다. 만만치 않은 레슨비도 충당해야 했고, 나중에 정말 합격했을 때를 대비해 등록금과 생활비에 조금이라도 보태야 했다. 그 당시 나는 대기업 3년 차였지만, 모아둔 돈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늘 그렇듯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은 나를 항상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내 나이, 문과생 직장인 3년 차, 그다지 자랑할 것 없는 내 통장. 하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계획한 퇴사 작전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는 누구나 먹는 것이었고, 이 작전을 내일보다 오늘 시작하는 게 조금이라도 나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시간이 금이었다. 나는 레슨비와 시간에 대해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뒤, 집으로 향했다. 회사에서 약수역 작업실로, 다시 약수역 작업실에서 집으로 가는 늦은 퇴근이었지만 발걸음이 가장 가벼운 퇴근길이었다.


며칠 뒤, 난 선생님에게 수업을 하겠다고 의사를 전했고, 주경 야작 (晝耕夜作)의 삶이 시작됐다. 한 번에 세네 시간 정도 하는 레슨은 우선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정하고 진도에 맞춰서 레슨 횟수를 좀 더 늘려나가기로 했다. 레슨비는 내 월급의 1/3이었다. 과감하게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옷과 신발 사는 것을 줄이고, 내 퇴사 작전에 올인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퇴사의 꿈을 안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그림 그리는 직장인의 삶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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