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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Aug 24. 2023

해변의 카프카 / 무라카미 하루키 ; 김춘미 옮김

KOR FIC MURAKAMI

Disclaimer :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다. 내가 하는 하루키에 대한 모든 얘기는 편향되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이상한 힘이 있어서 다 읽고 나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첫째,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둘째, 하루키가 이야기마다 즐겨 사용하는 공통된 소재가 있어서 그나마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내용이 그의 다른 이야기들과 섞인다.

셋째, 이야기가 뒤죽박죽 된 상태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워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한편만 읽고도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있다.


머릿속에  구별되는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도 못할 만큼 흐리멍덩하고, 특별히 도드라지는 특징도 없는 이야기라며 도대체 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를 그리 열심히 읽어대고 있느냐 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에 있는 또 다른 힘에 대해 말을 해야만 한다.


첫째, 하루키의 이야기는 낫(scythe)과 같다. 한번 걸리면 훅- 하고 이야기 안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둘째,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는 재즈, 올드팝, 클래식 음악등 소설 전체를 가로지르는 주제음악 같은 것이 있고, 고양이나 까치, 양 등 영물이라 불리는 동물들이 등장하고, 인간과는 차원을 달리해서 사는 어떤 "존재"가 소개되는데, 이 형식이 꽤나 중독성이 있다.

셋째, 이야기 안으로 맥없이 끌려들어 가 다 읽어내고야 마는 일을 몇 번 당하다 보면 그 기이한 느낌과 끌림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에 이야기가 기억나고 안 나고 따위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그의 글을 읽게 된다.


해변의 카프카도 하루키의 그런 소설 중 하나다. 세 번을 읽었는데, 이미 읽었던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변의 카프카도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印)이 찍힌 작품이다.


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대부분의 장소는 시코쿠섬이다. 시코쿠 섬은 88개 사찰을 따라 1600km 순례길을 걷는 시코쿠헨로가 있는 섬이다. 일본에서는 가장 영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소설의 배경이 되어 이야기가 펼쳐진다.


 15살  주인공 카프카의 이야기는 현실과 초(超)현실 (비(非)현실이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을 넘나들고 현재와 신화를 넘나 든다. 상반된 두 가지  세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면서 이 두 세계가 사실은 같은 세계라는, 그리고 동시에 절대 같을 수 없다는 모순적 메시지를 전한다. 모순을  이렇게 아름답고 우아하게 다룰 수 있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독보적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반드시  그곳에 가야만 알 수 있다. 그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런 느낌만 있다.


카프카와 함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이며 고양이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나카타를 통해 반복되는 대사다. 운명이라는 것이  그렇다. 닥치기 전에는 어떠한 실체도 없고 무게도 없고 의미도 없다. 하지만 닥치고 나면 나를 숨쉬기 힘들 정도로  짓누르기도 하고 어마어마한 실체로 집어삼키기도 하고 나를 옭아매어 규정하기도 한다. 다달아야 하는 곳에 도착했을 때, 느낌은 현실이 되고 그 순간 우리는 운명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순간 현실의 무게가 정해진다.


현실의 무게를 외면하기 위해 현실을 피하는 일은 존재에게는 유해한 일이다. 현실은 현실을 살아내야 더 이상 현실이 아니게 되고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현실에서 자유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 카프카에게 자신의 글을 남긴 도서관장 사에키상은 과거가 현실이 되어 더 이상 현실을 살지 못하게 되었고 그의 삶은 자유를 잃은 채 점점 가라앉았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나면 할 말이 참 많은데, 어수선하고 머리가 왕왕거려서 정리가 잘 안 된다. 마음만 앞서고, 감상만 가득해서 단정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해변의 카프카 한 줄 요약 :

하나의 통합된 이야기라는 허상은 수천수만의 조각난 글자를 써 내려갈 때 실체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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