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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Aug 22. 2023

마음 / 나쓰메 소세키 ; 김활란 옮김

KOR FIC NATSUME


어떤 인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인간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저런 인간 말종과 내가 만나게 된 운명이 야속해 견딜 수가 없다. 결국 더러운 놈 내뱉고는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그 인간을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하지만 기억을 영구삭제하는 일은 초능력 같은 일인지라 불쑥불쑥 그 인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 때면 속수무책 불쾌한 기분에 숨이 막혀온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 나를 힘들게 한 그 인간과 나와의 접점이 줄어들고 화도 줄고 분노도 줄어든다. 그런데 느닷없이 벼락같은 생각이 나를 쪼갠다.


'내가 혹시 그렇게 내가 싫어하던 그 인간 같은 인간이 아닐까. 내가 바로 그 인간이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내가...'


내가 너무도 싫어했던 상대의 모습을 내 안에서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과 좌절의 깊이는, 내가 상대에게 직접 당하면서 겪었던 분노와 불쾌의 깊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타인을 경멸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이제 나는 절대 헤어날 수 없는 나라는 감옥에 갇혀 나를 매일 매 순간 대면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나에게 남는 선택지라는 것이 얼마 없다. 나라는 육신의 한계에 갇힌 내가 나를 혐오하게 되었을 때 나를 벗어나 자유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마음 상태를 담담하게 그려낸 이야기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다. 분노와 좌절, 불쾌와 당혹감, 흔히 무겁다고 느껴지는 감정 상태가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이야기의 톤만큼은 담담하고 무게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진행된다.


이런 담담한 진행이 비극으로 치닫고 있는 이야기와 대조되면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나름의 수용과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나름의 타협이 한층 더 서늘하게 다가온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읽다 보면 작가는 반드시 우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도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하지만, 아마 모르고 읽었어도 그런 그의 성향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가에게 어떤 일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 안에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틀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의 "악"이 눈에 거슬린다면 그 악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악을 다른 것들과 분별하여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쉬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어려움은 그다음이다. 그 악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자기부정을 해버리고 싶은 순간에 한 존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소름돋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나를 마주하는 순간 내가 맞게 되는 결말은 어떤 것일까.



사람의 마음이란 참 복잡해서 이렇다 저렇다 딱 말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다 저렇다 말해버리고 나면 마음은 참 단순해서 그 외의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가장 단단해질 수도 있고 가장 부드러워질 수도 있는 양극을 한 곳에 담고 있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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