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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Aug 20. 2023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 심윤경

KOR 895.78 SIM YUNGYEONG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혼자였다. 가족들은 아주 멀리에 있었고, 주변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또래 친구 중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친구도 없었다. 남편은... 그냥 말을 말자.


그래서 힘이 들었다. 아주 많이 힘이 들었다. 마땅히 육아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을 나눌 곳도 없었고 지혜를 구할만한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인터넷 맘카페였는데, 거기는 아주... 생지옥이었다.


그곳은 고만 고만한 지식을 가진 초짜 엄마들이 우르르 몰려서 이건 이래서 아이가 망한 거고 저건 그래서 아이가 큰일이 난 거니까 너랑 아이는 '에헤이 조졌네, 이거!'라는 식의 조언을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마음고생만 하다가 찾은 대안이 육아서적이었다.


정말 많이도 읽었다. 육아에 대한 지식은 일도 없었지만,  호기심이라는 것이 가득한 상태였으니 정말 게걸스럽게 육아책을 먹어치웠다.


어느 정도냐면... 너무 읽어서 배탈이 날 정도였다고 해두자.  


그 많은 책을 읽고 내가 얻은 결론은, (1) 내 아이는 어쩌면 전문가들이 아닌 엄마인 내가 제일 잘 알 수도 있다는 거, (2) 애는 잘하고 있다는 거, (3) 나만 잘하면 된다는 거였다.


누군가 육아 서적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추천하는 책이 두권 정도 있다.


How to Talk So Kids Will Listen & Listen So Kids Will Talk (1980) by Adele Faber and Elaine Mazlish  (한국에서는 "말이 아이의 운명을 결정한다"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으로 번역되어 2019년에 출간되었다. )
The gift of imperfection (2010) by Brené Brown (한국에서는 "불완전함의 선물"이라는 제목과 "나는 불완전한 나를 사랑한다"로 각각 2011년 2019년에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되었다.)


그런데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읽는 순간 알았다. '아, 이 책도 리스트에 추가!'


사실 Dr. Brené Brown의 책도 심윤경 작가의 책도 육아서는 아니다. 책의 집필 목적도 육아를 위한 것이 아니고,  도서분류도 육아서 쪽에 들어가지 않는, 정말로 육아서가 아닌, 육아서로 의도된 적 없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이라도 빽빽하게 나열된 육아서의 테크닉을 읽고 기가 죽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육아서는 이제 내려놓고 이 세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육아의 방법과 기술이라는 것이 고장 난 물건 고치 듯 배울 수 있는 기술 같은 거라면 육아서에서 배운 대로 실생활에서 육아기술을 시전 하면서 살면 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드는 생각은 육아는 그런 게 아니다는 것이다. 육아서에서 말하는 잔기술들로 육아의 거대한 산을 넘어가는 일은 마치 튼튼한 로프가 필요한 자리를 굵은 명주실로 대체해서 산을 타보려는 시도 같은 것이다.   


육아는 나라는 존재가 바뀌는 경험이다. 그래서 그렇게 버겁고 지독하게도 힘든 것이다. 여태껏 살던 세월에 마침표를 찍고 그다음 단계에 서는 경험이다.  그러니 육아서라고 타이틀이 붙은 책들에서 그 순간을 모면하는 방법들을 보고 열심히 현실에 적용해 보아도 큰 변화를 보기 힘든 것이다.




드디어 이 글에서 해보고 싶은 말을 해보자면 이런 거다.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읽어보면 육아의 산을 오를 수 있는 튼튼한 로프를 잡은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뭐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쓸 일인가 싶긴 하다. 사실 심윤경 작가의 글은 소소하고 가볍고 비장함 따위와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름다운 할머니께서 아무런 타격감 없이 그녀에게 가르쳐 주신 사랑의 따뜻함이 사랑의 표현을 헷갈려하는 초보 엄마, 아빠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믿는다. 육아는 결국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상황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그 사랑을 구현해 내며 산다. 자잘한 예시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표현을 관통하는 원칙에 대한 자각이다. 그리고 육아서와는 거리가 먼 이 책이 그 원칙에 대한 맛을 보여주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식으로 아이를 사랑해야 하는 건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책. "노르스름한 햇살이 드는 방, 공기 속을 떠다니는 먼지를 보(p.46)"는 듯한 느낌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 타격감 없는 나른한 이야기가 보드라운 먼지처럼 살포시 가슴에 내려앉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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