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화 : 어떤 일로 인하여 생기는 재난
읽고 실망한 책은 보통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지 않는다. 이미 책을 읽느라 쓴 시간으로 작가에 대한 예의는 다 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쓰다 신조의 "죽은 자의 녹취록"은 책을 읽고 실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감상을 쓰고 싶어졌다. 사실은 실망이라기보다는 애매함에서 비롯된 감각 같은 것이 남았는데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책 표지에서 설명한 ‘앙화(殃禍) : 어떤 일로 인하여 생기는 재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애매한 기대와 어긋난 독서 경험이 묘한 찌꺼기를 남긴 기분이다.
이 책의 외형적인 요소는 흠잡을 데가 없다. 커버 디자인은 매우 훌륭하고 제목은 탁월하다. 죽은 자의 녹취록이라니, 그보다 더 직접적이고도 유혹적인 공포소설의 이름이 어디 있을까 싶다. 띠지에 적힌 노란색 문구 “여섯 편의 괴담, 그리고 망자들이 남긴 마지막 육성…”은 독자를 미리 섬뜩한 목소리 앞으로 이끌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옮긴이의 해설까지 읽고 나면 책을 펼치기도 전에 이미 이 이야기에 대한 기대는 단단히 조성된다.
그러나 막상 페이지를 넘기면 어긋남이 찾아온다. 공포소설을 읽는데 정작 무섭지가 않은 것이다. 예의 공포소설을 읽을 때면 찾아오는 으스스함이나, 문장을 따라가며 서서히 쌓이는 긴장감이 좀처럼 찾아들지 않는다. 물론 호러라는 장르가 반드시 독자를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공포소설’이라는 약속이 있다면 최소한의 긴장은 확보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것을 과연 공포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했다.
장르소설의 핵심은 독자를 한순간에 끌어당기는 힘, 곧 ‘훅’에 있다. 그것은 독자를 이야기의 중심에 묶어두는 보이지 않는 줄이자, 몰입의 강도를 결정짓는 매력이다. 그런데 "죽은 자의 녹취록"에서 그 훅은 지나치게 약하게 느껴진다. 이야기가 흩어지고 중심이 잡히지 않는다. 어수선함이 의도된 장치일 수도 있겠지만, 그 불균형으로 인해 독자의 집중이 흩뜨려 지고, 이야기를 따라가려는 의지가 여러 번 공중에 풀려나버리고 만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남은 것은 허전함이다. 무섭지도 않고, 탄탄하지도 않았다. 제목이 약속했던 섬뜩한 목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시간을 내서 감상을 적고 있는 것이 잘 이해가 안 된다. 앙화가 뭍은 느낌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