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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 장편소설

제도의 식탁, 불협화음의 현실

by 저나뮤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느껴지는 답답함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을 때와 비슷하다. 숨이 막히고 불편하다. 하지만 불편함 때문에 책을 내려놓자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병모 작가의 "네 이웃의 식탁"은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이 공동주택의 입주 조건은 입주 십 년 이내에 아이 셋 이상을 낳으려고 노력하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공간에 들어온 젊은 부부들은 저마다의 사정과 기대를 안고 그곳에 들어와 서로의 이웃이 된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조각조각으로 갈라지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이웃의 식탁’은 사실 별 의미가 없는 말이다. 이웃끼리 서로의 밥상에 무엇이 올라왔는지까지 알려주는 정서적 친밀함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웃은 그저 어쩌다 보니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지 내 삶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아니다.


그러나 입주민들은 이웃이 되었고 과거부터 공동체라면 으레 그럴 법한 행위를 시작한다. 장을 함께 보고, 아이 돌봄을 분담하고, 카풀을 조직한다. 쉽게 예견할 수 있듯이 이러한 시도는 시작도 하기 전에 삐걱댄다. 누가 더 기여했는지, 누가 오래 아이를 돌봤는지, 누가 적극적이고 누가 소극적인지 같은 사소한 문제들이 갈등의 불씨가 되고 결국 공동체 전체에 긴장이 번진다.


입주민들은 이미 각자의 문제를 짊어진 젊은 부부들이다. 육아, 경력, 금전, 관계 문제는 공간을 옮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환경은 기존의 문제를 그대로 끌고 들어온 개인의 삶에 공동체라는 이름의 새로운 갈등을 덧붙일 뿐이다.


등장인물들의 갈등은 지나친 친절의 말투, 어색한 시선, 대화 속의 침묵 등 작은 단서들에 의해 서술된다. 그러고 그런 장면들이 등장인물과 독자의 불편을 서서히 키워간다.


공동체라는 것은 묘한 단어다. 개인이 모여 집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라는 구조 속에서 개인이 만들어지는 현대의 공동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 하지만 그 확장된 사회 안에서 진정한 의미를 느끼려면 필요한 것들은 과연 어떤 공동체가 제공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은 무엇도 제공하지 못했고 그들의 실험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마지막, 모든 이가 떠나고 한 가정만 남은 자리에 또 다른 가정이 새로 입주한다. 이 가정도 사실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 남겠다는 선택으로 남았다기보다는 남을 수밖에 없는 사정으로 인해 남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 가정이 꿈에 부풀어 있는 새로운 가정을 맞이한다. 실패한 실험에 사람들이 계속 모여드는 이유는 ‘우리는 다를 것’이라는 자기 확신일 수도, 근거 없는 낙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결과는 예측되고 그 결과는 불편하다.


이 소설의 감상은 결국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불편하다.” 그리고 “잘 썼다.” 구병모 작가의 힘은 이 불편함을 끝까지 견디게 만드는 데 있는 것 같다. 잘 써진 불편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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