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피부를 가진 아이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사실 달랑 두 편을 읽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내가 황당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한겨레 문학상이 찾는 작품은 독자에게 난해한 미학적/ 문학적 체험을 제공하는 작품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현실에 가깝고 우리가 쉽게 체험할 수 있는 사회적 진실, 누구도 모른 척할 수 없는 구체적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이 한겨레 문학상이 찾는 작품 같다. 노벨문학상 작품은 독자의 인내와 쉽지 않은 독해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야기들이고 또 그러한 어려움으로 그 무게를 입증한다면, 한겨레 문학상은 가장 직접인 언어로 사회를 응시하고 있는 작품을 찾아냄으로써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 읽었던 탱크에 이어 멜라닌 역시 잘 쓰인 르포 기사처럼 이해하기 쉽고 동시에 불편할 만큼 명료하다.
하승민 작가의 멜라닌은 파란 피부를 가진 소년 재일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는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베트남인 어머니와 노동자 아버지를 둔 이주민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띄는 파란 피부색 때문에 그는 차별을 당한다.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동양인이라는 낙인, 가난한 집안이라는 조건, 부모의 보호가 약하다는 사정이 그를 또다시 주변부로 밀어낸다. 사회가 달라져도, 언어가 달라져도, 재일은 끝내 환영받지 못한다. 그는 가장자리의 아이로 남는다.
이 이야기는 아주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묻고 있다. 왜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가. 이 견고한 차별적 사회에서 누가 행복할 수 있는가.
차별은 제도와 언어, 시대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익숙한 얼굴로 우리 곁에 남아 숨 쉰다. 이 끈질긴 생명력을 생각하며 멜라닌을 읽다 보면 차별에 대한 공포심이 밀려온다. 차별이 존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장 근원적인 것은 인간의 ‘두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는 사회의 바깥자리에 서는 것보다는 중앙부에 서기를 바라고, 내가 밀려날까 하는 두려움에 기반해 나보다 약해 보이는 이를 대신 바깥에 세우고 그보다는 내가 한발 정도 안쪽에, 중앙부에 가까운 쪽에 서기를 원한다. “나는 아니니까”, "나만 아니면 되지"라는 안도감을 통해 이 차별의 악순환은 잔혹하게 유지된다. 그리고 이 논리가 개인의 수준을 넘어 집단의 합의로 굳어질 때 불평등과 차별은 단단한 시스템이 된다.
1990년대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도 우리는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2025년, 이제는 내 아이가 대학을 가려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선뜻 말하기 어렵다. 변화를 위해 애쓴 시간들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만큼 변화가 더디고 지난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마치 끊임없이 물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처럼 차별의 문제는 엄청난 자원을 쏟아붓고도 쉽게 그 결과물을 확인하기가 힘들다.
멜라닌은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며 그 본질에 대해 생각하라 말한다. 차별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그 차별이 한 아이의 삶에 어떻게 침투하고 고착되는지 보여준다. 재일이 겪는 모멸과 상처는 통계나 보고서가 포착하지 못하는 차별의 진짜 얼굴이다. 차별은 한 개인의 삶에 각인된 경험이며 또 다른 누군가가 외면함으로써 유지되는 비극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이 이 지점을 다루기 작정하면 멜라닌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르포보다는 내밀한 감정이 다뤄지고 학문보다는 냉혹한 체감의 온도가 다뤄진다.
주인공 재일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어디에 있을까. 이 질문은 사실 허구의 소년을 향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는 우리 모두를 향한 물음일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과연 그 가능성을 품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자기기만 속에서 또 다른 재일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가. 혹은 내가 재일이지 않은가.
이야기를 모두 끝내고, 현실의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야기 안으로 찾아 들어간다. 그는 이 질문을 직접적으로 물으며 우리가 답을 찾기를, 문제를 외면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멜라닌을 덮으며 재일의 행복을 기원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도 그런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세상을 만들어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그 실마를 찾아들어가는 노력을 시작하게 된다.
문학이 남기는 울림은 바로 이런 ‘불가능에 가까운 희망’을 계속 말하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185쪽> 토머스 제퍼슨도 21세기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겠지? 그 시대 기득권에게는 이런 문제의식조차 없었을지 몰라. 차별은 그 시스템의 피해자만 인지할 수 있는 독가스 같은 거니까. 수십 번의 경험이 필요한 게 아니야. 몇 번. 어쩌면 딱 한 번의 끔찍한 경험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폐에 남기는 거야. 그리고 숨을 쉴 때마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 거지. 사람들은 그걸 몰라. 차별이 강물처럼 흘러야지만 차별인 줄 안단 말이야. 사실 차별은 곳곳에 놓인 지뢰밭 같은 거야. 딱 한 번의 폭발에도 우린 불구가 된다고.
<멜라닌, 하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