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오르던 소년은 잠시 멈춰 숨을 골랐다. 작년에 쓰던 빨간 야구모자는 이미 작아진 지 오래였다. 억지로 눌러쓴 모자 아래로 땀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여름의 햇빛은 의심할 필요도 없이 강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참에 서서 소년은 저 멀리 계단 위에 걸린 어닝을 눈을 찡그리며 바라보았다.
소년은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회색 계단 위로 떨어지는 땀방울이 까만 점이 되었다.
점. 점. 또 점.
심장은 제 멋대로 뛰고 있었고 폐 속의 공기는 뜨거웠다. 왔던 길을 되짚어갈 수는 없었다. 돌아간다고 여름이 멈출 리 없다.
바람도 한 줌 없다. 소년은 계단의 난간을 잡고 잠깐 쉴까 생각을 했다. 그 금속덩이는 이미 세차게 수증기를 뿜어내면 팔팔 끓는 주전자처럼 성을 내며 끓고 있었다. 소년은 손바닥을 하얀색 티셔츠에 문질러 닦았다. 허리가 절로 굽어진다. 허벅지에 손을 얹은 채 숨을 몰아쉰다. 소년은 천천히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닝 너머로 빛의 경계가 얇고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소년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가야만 했다. 돌아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유는 여전히 분명치 않았다. 어린 마음속 확신이라는 것은 대게 이런 식인 것이다. 흐릿하고 경계도 없지만 단단하고 묵직한 법이다.
소년은 한 계단을 올라섰다. 두 번째 계단으로 발이 저절로 옮겨진다. 올라가니 어닝 아래의 그늘이 점점 얇아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몇 걸음만 더 가면 한층 더 가까워진 여름의 빛이 온몸을 뒤덮을 것이다. 소년은 숨을 깊고 길게 들이켰다.
햇빛.
햇빛의 냄새가 훅 소년의 몸을 채운다. 낡은 벽돌, 먼지, 뜨거운 공기가 뒤섞여 만든 여름의 냄새다. 낯익은 냄새에 소년은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내 빛의 경계에 발끝이 닿는다.
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찬 바람이 스쳐가고 푸른빛이 번지며 소년을 감싸기 시작했다.
보랏빛 잔상.
멀리는 들리는 짧은 숨소리.
여름의 열기가 뒤집히고 있었다.
소년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눈앞에 나타난 세계를 바라보며 지금껏 올라온 계단을 생각한다.
여름의 빛의 끝에서,
소년은 11월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