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구, 팔, 칠, 육...
숫자를 거꾸로 세며 발걸음을 재촉해 길을 건넌다. 숨이 차오르자 웃긴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는 백 미터를 10초도 안돼서 뛰는데, 나는 고작 왕복 2차선 도로를 건너면서 숨이 차오른다.
누군가는 10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역사에 길이 남을 세계 기록을 세우기도 하는데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길을 건너며 자꾸만 뒤처진다.
오, 사, 삼, 이, 일...
반짝거리던 신호등이 마지막 숫자 일과 함께 색을 바꾼다.
내가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운전자의 불편한 시선을 느끼며 아직도 횡단보도 위에 서 있는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연석 위에 올라서 '후'하고 숨을 내뱉어본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태어난 그날부터 함께한 익숙한 리듬을 상기시킨다.
쿵쿵- 쿵쿵- '후'
심장이 뛰는 박자에 맞춰 다시 한번 숨을 내뱉는다. 10초 만에 건너온 횡단보도에는 이제 보행자들 대신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건너온 방향으로 몸을 돌려 뒤쪽을 바라본다.
사람들이 가지런히 연석 위에 줄을 선다.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다.
눈앞을 향해 그대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저절로 눈이 게슴츠레해진다. 10초를 남겨놓고 깜빡이는 신호를 잡아 건너기 위해 나는 달렸다. 숨이 차오르게 뛰어 건너온 자리를 바라보니 10초 전 허둥거리던 내가 점멸하고 있다.
사실 오늘은 10분 먼저 집을 나섰다. 횡단보도 앞에서 몇 분 정도 시간이 지체된다고 해도 평소보다 일찍 출근할 수 있었다.
'뭐 하러 뛴 거야, 바보같이. 제대로 뛰지도 못하면서.'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여유로운 아침이라는 것은 습관에 살육당한 느낌이다. 형편이 되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다시 몸을 돌려 직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쇼윈도에 비친 내가 걷고 있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누구 하나 내게 구령을 붙여 주는 이가 없건만 마치 열병식을 하는 군인이라도 된 듯 착착 착착 네박자 리듬에 맞춰 행진을 한다.
오른손과 함께 왼발이 나가고 왼손과 함께 오른발이 나간다.
착착 착착.
생각 없이 10초에 주파한 횡단보도만큼 자연스럽게 앞뒤로 오가는 사지가 신기하다.
어릴 적, 체육실기 시험 중에 이상한 시험이 있었는데, 이런 것이었다.
담임선생이 삑-삑-삑삑- 호루라기를 불어대면 가만히 있던 학생 전체가 앞으로 전진을 했다. 어느 정도 전진을 하면 담임선생은 운동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이런 소리를 외쳤다.
우향 앞으로 가!
좌향 앞으로 가!
뒤로 돌아가!
제자리에 서!
뭐 이런 것들이었는데, 각각의 구호가 왼발에 떨어지는지 오른발에 떨어지는 따라 학생들이 따라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지금도 몸과 마음이 제대로 일치되어 움직이지 않는 나에게 초등학교 시절 제식훈련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특히 뒤로 돌아가! 는 도대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는데, 왼손과 오른발이 나가야 하는 도보의 기본룰이 뒤로 돌아가만 하면 왼손과 왼발이, 오른손과 오른발이 함께 나가는, 일명 소걸음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소가 그런 식으로 걷는다는 것은 그때 처음 들었다. 진짜 소가 그렇게 걷는지는 지금도 확인해 본 바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 사실 웃기는 말이다. 소가 손이 있는 동물을 아니지 않은가.
아무튼 이 멍청한 제식훈련으로 실기평가를 하기도 했는데, 나는 일명 소걸음을 고칠 수 없어 빵점을 맞았던 것이다. 그리고 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멍청한 시험에 멍청한 반응이었다.
그 딴 거 못한다고 내가 목적지에 가닿지 못했던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아닌가.
소걸음으로 걷는 나는 사람구실을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뒤로 돌아가!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일은 괴롭다. 시간을 두 번 사는 일은 정말이지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늘 하던 대로 그 시간에 집에서 나왔어야 했다. 10분 먼저 나온 선택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침에 어울리지 않는 복잡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