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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Sep 21. 2023

엄마의 밥상

나는 작은 것들의 합이다.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결국 작은 것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작은 것들은 결코 작을 수 없다.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했다. 나름은 선거도 할 수 있는 나이었건만 자식을 객지에 혼자 둬야 한다는 생각에 부모님은 마음이 편치 않으셨나 보다. 두 분은 친척집, 자취, 하숙, 기숙사 등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셨다. 결국은 대학 기숙사가 선택되었는데, 친구도 사귈 수 있고 규율에 따라

움직여야 하니 규칙적인 생활에 도움도 되고, 여학생들만 사는 곳이니 비교적 마음 편하게 당신들의 딸을 맡길 수 있을 것이라는 부모님 나름의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단체 생활에 대한 회의가 깊었으며, 규율에 얽매여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학생은 어른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부모님 결정에 맞설 만한 배짱이 없었던 나는 기숙사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기로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대학 입학식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입학을 앞둔 학생들은 대개 들뜬 마음과 새로운 세계에 들어간다는 긴장감으로 분주한 날을 보낼 테지만, 나는 기숙사 단체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에 가까운 의구심과 당장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근거 없는 부담감에 그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기숙사 입실일은 입학식 하루 전날이었다. 말인즉, 입실을 돕기 위해 나와 함께 입학식 전 날 상경한 부모님은 다음 날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하신다는 것이었다. 본가에는 동생 두 명이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아직 어린 동생들은 부모님 손길이 필요한 나이였다.


복잡한 감정으로 입실을 마쳤고, 기숙사 밖으로 나가 부모님을 배웅하였다. 3 월이 시작되었지만 100 년이 넘게 교정에 서 있던 아름드리나무들은 아직 초록 옷을 입지 못하고 스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3 월이니 4 월이니 그런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이. 충분한 온기를 모아 때가 되면 어련히 옷을 바꿔 입지 않겠냐는 듯이. 아름드리나무로 가득한 교정을 가로질러 부모님은 내 시야에서 멀어지셨다.


낯선 기숙사에서 첫날밤은 여학생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실내화 끄는 소리의 조합으로 가득했다. 점호 시간이 되자 길고 긴 복도 안에서 이리저리 어지럽게 튕겨져 나오는 웅성거림이 기숙사 전체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시크릿 가든의 녹턴에 묻혀 잦아들었다. 괴상한 곳이었다. 시크릿 가든의 음악을 저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입학식이 있었고, 일 년 먼저 대학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은 뒤늦게 대학생활에 합류한 나를 축하하며 학교 근처 KFC에 가자고 했다. 돌도, 철도 씹어 먹을 나이었건만 KFC에서 나온 튀김닭은 먹을 수가 없었다. 식권을 내고 줄을 서서 배식을 받아 단체로 아침을 먹는 기숙사 아침 풍경에 질려서 아침은 거른 상태였다. 이미 시간은 오후였고 배가 고팠을 법도 한데 앞에 있는 닭에는 눈이 가질 않았다. 친구의

권유에 튀김닭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뜬금없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튀김닭을 먹다 우는 내 모습에 당황한 건 나나 친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은 무슨 일이냐며 걱정을 하다가 집에 가야겠다는 내 말을 듣고는 이내 깔깔 웃으며 나를 놀려댔다. 선거도 할 수 있다고, 다  컸다고 떵떵거리던 자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고작 ‘집에 갈래’였으니 걱정하던 친구들이 웃음으로 긴장을 녹여낸 건 당연했다. 자신들도 겪어본 일을 일 년 늦게 겪고 있는 동갑의 친구를 응원하는 데는 웃음만 한 것이 없었다.


그 웃음 덕이었던 것 같다. 기왕 대학에 온 거 대학생으로 살아보자 하고 결심한 게. 내 옆에는 울고 있는 입에 닭다리를 하나 더 밀어 넣어 다시 나를 웃게 할 만큼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누군가 정해 놨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밥을 먹어야 하는 법은 없었다. 배고플 때 먹고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으면 그만인 일이었다. 온갖 소리와 어우러져 기괴하게만 들리는 시크릿 가든의 녹턴은 다른 음악으로 귀를 막아 듣지 않으면 그뿐이었다.


삶의 큰 선택은 물론이요, 작은 선택들까지도 나와 함께 해주시던 부모님 곁을 떠나 태어나 처음으로 무언가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나만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내가 해야 했던 선택들의 무게는 너무 가벼웠고 깊이라는 것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간을 소중하게 추억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선택들이 모아져야 비로소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을 살아낸 후에야 비로소 삶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자가 되어간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소한 것들, 너무 작아서 눈길이 가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가 결국은 나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기 때문이다.


photo credit : Kyungbae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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