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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Jan 06. 2024

입술, 네가 왜 거기서...

대게는 내 손이 어디쯤 달려 붙어 있는지, 내 발가락이 몇 개인지, 내 머리끝이 어디쯤 위치했는지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 걸 알려면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손이 달려있는 위치를 눈으로 보거나, 발가락이 몇 개인지 세어보거나, 머리끝을 손으로 만져보는 등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비로소 내가 나의 신체를 인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손이 다치거나, 발가락에 동상이 생기거나, 심한 편두통을 겪게 되면 그런 특정한 노력 없이도 나는 내 신체의 정확한 위치 및 형태를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입술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그것도 아랫입술. 그렇다. 입술은 두쪽으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위에 하나. 아래 하나.


나는 내 아랫입술이 거기에 달려있는 줄을 몰랐다. 그리고 내 위쪽 이가 아랫입술 안쪽에 가 닿아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불편해졌다. 입술이 안쪽으로 부어있는 느낌. 이가 부은 입술에 앉아있는 느낌. 괴롭다. 내 아랫입술 안쪽을 끊임없이 인지하게 된다. 아. 싫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느끼고 있다는 것. 특정 존재에 대해 쉼 없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피곤하다.


제대로 기능하는 존재라면... 그렇다. 그 존재를 알아채기가 어렵다.

어떤 존재가 희미해져 간다면 비로소 그 존재는 정확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자기 자리를 못 찾은 존재는 어색하기 때문에 눈에 띄고 도드라지고 어딜 가든 느껴진다.


묻고 싶다, 아랫입술. 언제까지 내가 네 위치를 알아야 하는 거냐.

내 몸에 입술 너만 존재하는 것만 같단 말이다. 네가 나의 다가 아닌데 말이지.


그래도 안다, 입술. 불편함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는 것들에 더 많은 애정을 쏟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불편함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그래야 결국엔 내가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아… 아랫입술… 진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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