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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Jan 05. 2024

요동 (搖動)

월미도에서 디스코 팡팡 타봤나.


디스코 팡팡에 올라탈 땐 어떤 다짐을 하게 된다. '절대 떨어지지 않으리라' 뭐 그런. 이리저리 뒹구는 탑승자들을 보면서 '나는 끝까지 우아하게 즐기다 내려오리라' 하는 뭐 그런.


그런데 디스코 팡팡을 타본 사람은 안다. 일단 디스코 팡팡이 출발한 후 디제이가 나를 떨어뜨려야지 한다면 내가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내가 힘이 얼마나 센지와는 상관없이 처음 앉아 있던 자리에서 끝까지 앉아있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디스코 팡팡 디제이는 기계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튕기고 꺾고 멈추면서 타깃으로 한 탑승객을 결국에는 이리저리 나부끼게 만든다. 나부끼다니... 아니다 이건 너무 고상한 표현이다.


디제이의 타깃이 된 탑승객은 앉은자리에 끝까지 머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은 주르륵 자리에서 미끄러지고 심지어는 데굴데굴 굴러 반대쪽에 있는 생면부지의 탑승객 발 앞에서 무릎을 꿇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디스코 팡팡에서는 이 모든 일이 웃으면서 일어난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타깃이 되어 떨어지는 탑승객도 웃고 있고, 타깃이 된 친구가 반대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을 보는 타깃의 친구도 웃고 있고, 그날 처음 본 사람이 자신의 발 앞에서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고 있는 낯선 이도 웃고 있고, 이 모든 판을 짠 디제이도 웃고 있다.


살다 보면 들꽃이 가득한 고요한 시골길을 걸어가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바라지도 않았던 월미도에서 디스코 팡팡을 타는 것처럼 삶이 요동치는 순간도 있다. 세계가 나를 잡고 흔드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신이 나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삶 자체가 미쳐서 날뛰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가 있다. 살다 보면.


그럴 땐 나의 어떤 다짐도 나의 어떤 마음도 중요하지 않다.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라는 다짐도 '나는 끝까지 즐겨보리라'는 마음도 요동치는 삶의 자리에서 나를 끄집어 내주지 않는다. 내 삶은 마치 나와는 별개인 양 널을 뛰며 나를 시험한다.


그럴 때는 버티지 말자. 그냥 주르륵 떨어지자. 떨어지면서 디스코팡팡에 탄 탑승객처럼 하하하하 웃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러면 너무 미친 사람 같을 수도 있을 테니까, 웃는 건 필수가 아닌 옵션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그냥 주르륵 떨어지자.


디스코 팡팡도 못 견디면서  삶의 요동을 어찌 버티랴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더 이상 내 삶에 심각함을 더하지 말고 새털처럼 가볍게.


삶이 너울 거릴 땐 말이다, 다 털어지고 다 떨어져서 중요한 것만 남을 때까지. 그때까지. 멀미 나서 다 토해내고 벌게진 눈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결국 내가 가진 게 무엇인지 볼 수 있을 때까지. 흔들리는 거다. 알기 전까진 버텨봐야 소용없는 거다. 계속 울렁울렁할 테니까.


다 게워내고 속이 시원해지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둘러보자. 상상도 못 한 남의 발아래에 나동그라져 있다면 하하하하. 웃으면 된다.


속이 시원해졌으니까.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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