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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Mar 07. 2024

엄마의 죽음은 사랑을 키워냈다

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로기완을 만난 그녀는 마음속에 담에 두었던 죄의식에서 해방되었을까. 로기완의 존재가 그녀에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을까. 완전한 타자인 로기완과 그녀는 어떤 끈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일까. 왜 그토록 그의 삶이 그녀에게 중요했을까.


우연히 접한 탈북자의 이야기를 우연으로 넘기지 못하고 그녀는 로기완을 찾아 떠난다. 벨기에 브뤼셀. 엄마의 삶을, 어쩌면 엄마의 죽음을 값으로 치르고 자신의 목숨을 구한 로기완의 삶은 살아내야만 하는 당위는 있었으되, 살아야 하는 자유는 없는, 살았지만 그저 살았다뿐인 삶이다. 그를 찾아 그녀는 낯선 곳으로 무작정 떠난다.


철저하게 당위로만 이끌어진 삶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유가 허용되는 삶으로 로기완의 시간이 흘러간다.


이 소설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로기완이 자유의 끝에서 내린 선택이다. 그는 사랑을 선택했다. 그의 엄마의 희생이, 아들에 대한 사랑이 이 불안정한 세계에서 결국 그를 사랑을 선택하며 사는 인간으로 키워낸 것이다.


당위로만 가득한 삶이 사랑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곳까지 이르기 위해 로기완이 채워내야 했던 시간을 따라가는 그녀. 그녀의 선택도 로기완 같았으면 좋겠다. 자유의 끝에서 사랑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자유의 가장 핵심에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


이야기 중간에 떨어진 "귀"가 소재로 나오는데, 이는 조해진 작가님의 단편 “유리”에도 등장하는 소재다. 신체에서 떨어져 나간 귀는 그 기능을 잃는다. 듣지 못한다. 소통하지 못한다. 갇혀 버린다. 이런 일차적인 것 말고 작가가 이 귀 메타포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을 텐데. 달랑 조해진 작가의 책을 두 편 읽은 나로서는 그런 깊이까지는 알 수가 없으니 아쉬울 뿐이다.


책 뒷면에 김연수 작가님의 추천글이 있었던 것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이야기 자체를 인용해야 맞겠지만, 여기서는 김연수 작가님의 추천글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우연히 한 남자의 삶에 끌린다. 그는 이니셜로, 혹은 흔적으로 남은 사내다. 그의 삶을 상상하는 것, 이해하는 것, 그리하여 글을 쓰는 건 무모한 욕망이다. 이니셜, 혹은 흔적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니까. 실패의 글쓰기는 예정돼 있다. 타인은 영원히 타인으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뭔가를 쓴다. 실패를 감당하겠다는 태도, 거기에 자기 삶의 모든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일은 문학에서 종종 목격된다. '로기완을 만났다"가 바로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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