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 최진영 소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떠올리게 한 소설. 출판사는 당장 한강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Deborah Smith 님과 연락해서 이 소설의 번역을 해야 한다. 우리만 읽고 끝내면 안 되는 소설이다.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차가운 땀줄기와 눈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동시에 잘 엮어낼 수 있는 섬세한 번역이 필요하다.
책에 대한 감상평 한 줄 없이 갑자기 무슨 번역타령인가 싶지만, 이게 감상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른 감상 중 하나다. 우리만 읽기엔 너무 아까운 소설이다.
사랑하는 존재가 죽음을 이유로 나와 세계를 달리 할 때, 나는 애도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 애도의 단계는 보통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5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개별적인 경험이지만, 이 개별적은 경험은 애도의 5단계 중 어딘가로 수렴되고 흔히 하는 말처럼 산사람은 살게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이 나와 그의 세계가 달라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의 세계가 완전히 박살 나 버리게 되는 경우는 어떨까. 나는 더 이상 발을 딛고 서야 할 곳이 없다. 공기도 희박해진다. 애도의 단계라 불리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공식은 세계를 잃고 공기를 잃은 자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얘기다. 나의 삶은 죽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구를 죽음으로 잃은 담이는 죽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삶에 남겨진다. 벌써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일만 세 번째다. 모두 다 힘들었고 모두 다 잊히지 않지만 그중에 구를 잃은 사건은 담이가 담아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
담이는 선택한다. 영원히 구와 함께 하기로. 그의 머리카락을 먹으면서, 그의 살을 삼키면서.
이 소설의 시작은 담이의 독백이다.
천 년 후에도 사람이 존재할까?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은 구의 독백이다.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 년토록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너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년 만만 년도 죽지 않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이 둘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세계가 갈리는 그 순간이 영원한 안녕이라는 뼈아픈 사실을 둘은 알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를 담아내야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가 기억되어야 했다. 구를 먹음으로 자신이 사랑한 구를 자신의 안에 넣고 더 이상은 이별이 없는 하나가 되기로 한 담이의 선택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식인이라는 소름 돋는 단어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가여운 영혼을 바라보며 울수 있게 되는 이유다.
언젠가 번역이 되어 더 많은 독자가 꼭 읽었으면 좋겠다. 최진영, 구의 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