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장강명
장강명 작가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짧게 짧게 진행된다. 장황한 묘사도 부연설명도 없다. 공간도, 시간도 모두 풀어헤쳐진 채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한계도 없고 규정도 없고 방향도 없고 결론도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안정감 있게 펼쳐진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서는 모든 경계가 툭 터지는 듯 한 개방감에 자유하게 되는 이야기다.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정확한 정보가 있고 정보를 객관적으로 취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시킨다면 얼마든지 누구든지 세계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환상이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세계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세계는 내 인식의 한계 안에 갇혀있다.
이 소설의 제목과 반복되어 사용되는 소제, 우주알 역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갇혀있는 나의 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 그믐 : 그믐이란 음력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믐달이 이 시기에 뜬다. 그믐달은 태양과 함께 뜨고 태양과 함께 진다. 운이 좋다면 새벽에 잠시 동쪽 하늘에서 떠있는 그믐달을 볼 수도 있지만, 대게 그믐달은 태양과 함께 다니기 때문에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우리는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는가. 세계라 하면 광활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세계란 내 인식 안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내 인식밖의 세계는 존재하고 있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알 : 존재하고 있지만 인식의 부재로 부존재하게 되는 존재로 이야기 안에 등장한다. 애초부터 인식을 할 수 없는 우주 알은 우리 중 누군가 인식했다 해도 언어로 자신의 인식을 풀어내는 데에 이르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인식을 풀어낼 언어가 부존 하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을 구체적인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는 일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일만큼이나 어처구니없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주인공은 우주알을 통해 갇혀있던 선형적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입체적으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은 자신이 살해당할 것을 예견했지만,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비극적 결말로 보일 수도 있지만, 주인공은 그 선택을 기꺼워한다.
마지막에 아버지랑 딸이 꼭 만나야 하는 거야?
만나야지.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이런 영화가 해피엔딩이 아니면 좀 곤란하잖아.
하지만 생각해 봐. 그 아버지와 딸은 서로 못 본 체로 수십 년을 떨어져 살았어. 그러다가 마지막에 만나는 건 겨우 십 분 정도야. 그 십 분으로 인생이 해피엔딩이 되고 안 되고 가 결정되는 거야?
그런가?
저 딸이 만약에 아버지가 오기 한 시간쯤 전에 죽었다면 말이야. 그러면 저 아버지와 딸은 엄청나게 불행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산 셈이 되는 건가. 운이 좋아서 딸이 죽기 전에 딱 십 분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그 수십 년의 인생에 갑자기 의미가 생기는 거고?
주인공이 우주알을 통해 얻게 된 것은 타자화다. 나의 삶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나는 나의 경험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완벽한 타자화의 상태에서 주인공이 내린 결정은 지구에서 내 마지막 모습이 어떠 하든지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의미를 만들고 온전히 선택의 경험에 나를 맡기게 한다.
전체를 전체 그대로 바라보는 능력은 결국 나를 보는 일이다. 전체를 평균 내어 각각의 특질을 뭉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전체로 공존할 때, 마침내 전체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이해가 시작되고 수용의 문이 열린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그렇게 인생의 의미를 이해했고, 선택에 확신했으면 경험 앞에 겸손했다. 아름다운 이야기. 장강명 작가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