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buzz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저나뮤나 Sep 27. 2023

딸에 대하여 / 김혜진 장편소설

KOR FIC KIM HYEJIN

언제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 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과거나 미래 같은 지금 있지도 않은 것들에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그런 후회는 언제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p.30)


어떤 책은 읽고 난 후 감상보다 책 속의 어떤 구절이 강하게 남는다.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도 그런 소설이다. 노인요양병원에서 일하는 엄마인 나는 삶의 마지막으로 무기력하게 밀려나가는 노인들을 보며 혼란스럽다. 젊은 시절 어떤 삶을 살았든,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든,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든, 요양병원 안에 있는 노인들은 "젊음"의 부재로 인해 인간의 지위를 상실한 채 살아간다. 나는 생각한다. 그리 치열히 살 필요가 있었을까. 무엇을 위해 그렇게 공을 들이며 이 노인들은 삶을 살았던가.


엄마인 나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이 딸은 엄마의 젊음과 바꿔 키워 낸 엄마의 소망이었다. 어느 날 딸은 여자파트너와 함께 나의 집으로 이사를 온다. 나는 다시 깊은 혼돈 속에 빠져든다. 내 딸이 어째서. 왜 이런 일이. 애써 부정하고 싶은 현실에 마주 선 엄마 앞에 또 하나의 숙제가 던져진다. 딸과 함께 대학에서 일하던 강사 중 하나가 부당 해고가 되는데, 딸이 그 강사의 복직을 위해 자신의 일을 포기한 채 시위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내 딸은 어째서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 자기 밥줄까지 놔버리고 도와야 하는가. 여기까지 오느라 소비된 그 많은 시간들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마음은 왜 항상 까치발을 하고 두려움이 오는 쪽을 향해 서 있는 걸까.
내 나이대의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20-30대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 물러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 그만한 자격을 갖춘 이들. 그러고 보면 나는 매사 너무 나이가 많은 사람처럼 굴고 있는지도 모른다. 늙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어떤 가능성들을 하나씩 베어 내면서 일상을 편편하고 밋밋하게 만드는 데에만 골몰하는지도 모른다. 무성하게 자라난 것들을 다 제거하고 마침내 평평해진 삶 너머로 죽음이 다가오는 모습을 주시하려고 애쓰는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뭔가 시작하고 맞서고 싸우고 이길 만한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면서 무료하지만 안전하고 무력하지만 차분한 일상을 유지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p. 130)


딸을 잘 키우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안전하고 차분한 노년을 보내기를 희망했던 나의 현재는 나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자꾸만 흐른다. 내 삶이 나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 이제 내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 말을 하는 동안 나는 젠이 아니라 나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니라 딸애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건 세상의 일이 아니고 바로 내 일이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나의 일이다. 이런 말이 내 안의 어딘가에 있었다는 게 놀랍다. 그런 말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죽을 때까지 드러나지 않는 게 아니라, 마침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렇게 말이 되어 나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p.131)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나의 삶이 되는 순간, 나는 선택해야 한다.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라 부정하거나 그 일도 내 일이라 인정하거나. 하지만 부정도 인정도 그 어떤 결정도 그 이후의 쉬운 삶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  



평범한 삶을 살다가 어떤 사건으로 "투사"가 되어버리는 어머니들을 생각했다. 그들 중 누구도 자발적 투사인 경우는 없었다. 자식이 아니었다면 그 길을 절대 걷지 앉았을 어머니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쉽지 않은 삶을 생각했다. 엄마이기 때문에 자식의 일이었기에 울면서 그 길을 가기로 선택한 엄마들을 생각했다.


모성이니 희생이니 하는 단어로 포장될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길을 가며 엄마들은 모두 울고 있지 않은가. 그들도 엄마가 필요한 딸 아니던가...


딸과 엄마의 이야기가 두 개의 축을 이루며 가다, 어느 순간 엄마의 이야기인지 딸의 이야기인지 딱 선을 긋고 말하기 힘든 지점 도달하는 이야기다. 결국엔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아채지만 어색함과 막막함, 아직도 한참 남은 시간에 대한 무게 앞에서 이야기가 끝난다. 아- 잘 읽었다. 하며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하는 소설이다.


인생에서 주어진 선택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 선택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진정한 선택이 될 수 있을까. 주어진 것 들 중에 선택하는 것이라면 이미 나는 잃은 것이 많은 상태다. 그런 선택이 얼마나 내 마음과 합하는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으로 무겁게 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주받은 질병에서 희망의 빛으로 / 김소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