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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나뮤나 Jun 05. 2024

현재는 없다

누가 그랬다. 현재는 없다고. 현재라는 것은 허상이라고.


바다 앞에 모래사장이 있다.  그리고 그 너머는 바다다. 그리고 그 경계를 우리는 해안선이라고 부른다.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이 구분을 찬찬히 짚어보자.  


모래사장은 존재한다. 바다는 존재한다. 해안선은... 해안선이라는 것이 진정 존재하는가.


이것은 모래사장과 바다의 경계일 뿐 모래사장이나 바다처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두 개의 존재가 만나는 부분을 임의로 해안선이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고, 그렇게 부르다 보니 그것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허상에 대한 인식이 존재를 끌어낸 것이다.


이것과 같다는 것이다. 과거는 존재한다. 미래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맞닿는 곳, 현재는 마치 해안선처럼 독립된 존재가 아닌 두 존재의 접점일 뿐 독자적 시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구절을 오래전에 읽었을 때 상당한 충격이 있었다. 현재가 없다니. 현재를 살라고 독려하는 그 많은 말들은 실체 없는 허상을 키워내라는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현재가 없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나의 문제와 고민은 단순해질 수 있다. 현재라는 실체가 없는 거라면 사고의 무게는 과거와 미래에 실어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실 어떤 지점을 현재라고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물도 시각으로 전달된 정보가 두뇌를 타고 해석되고 다시 눈으로 그 결괏값이 전송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고 해도 이 일련의 과정이 한순간에 이루어진 일은 아닐 수 있다.


정말이지 현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현재라는 허상에 쏟아붓고 있는 시간들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그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현재가 존재하느냐 아니냐 논증하거나 이론을 세우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시간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제한이 많은 인간의 몸으로는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시간의 미스터리 속에서 어떤 태도를 택할 것인가 하는 내 마음의 문제일 것이다.  


현재를 산다고 생각하지만 끊임없이 과거로 편입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나가는 시간에 애정을 담아 정갈하게 해석해 내는 마음을 소중히 지키는 것일 것이다.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담지한 미래에 대해서는 용기를 가지고 마음을 열어두는 태도로 살아내기를 결단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애정하고, 미래에 용기를 내는 일. 이 두 시간이 어딘가에서 만나 그것이 현재가 된다면 그 현재가 실제로 존재하든 허상에 불과하든 그것이 무엇이 되든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니 현재는 해안선 같은 것이라 해도 그 나름대로 애정과 용기 사이로 이리저리 밀리면서 아름다운 착시로 충분히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과거를 애정하고 미래에 용기내면 살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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