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 처음엔 길을 다시 찾으려고도 했던 것 같은데 미친 사람처럼 헤매다가 깨달았다. 그깟 길 따위 뭐라고. 그리고 내 길을 내며 걸었다.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길을 내는 일은 극한의 노동이었다. 되는대로 걷기로 했다. 길인지 아닌지 네 길인지 내 길인지 따지지 않기로 했다.
방향이 맞다면 걷기만 하면 된다.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한참을 걷다 방향이 잘못 잡힌 것을 알았다. 계속 걸은 나의 시간과 나의 노력이 쌓여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에 서있었다.
이곳에 서서 해가 다 지지도 않은 저녁 하늘에 급하게 나와 하늘 한쪽 구석을 지키고 있는 금성을 보니 알겠다.
지금 나를 이곳에 서게 한 내가 걸어온 길, 내가 살아온 시간, 내가 잡은 방향은 모두 옳았다.
오늘 여기서 너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