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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정 Oct 02. 2022

우리집에 천사가 사라지고 괴물이 나타났다.

프롤로그

세상사에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 오면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손에 잡고 사진첩을 열었다. 그곳에는 나의 보물들로 가득했으니까. 아들이 내 품에 안긴 이래로 나에게 주어졌던 모든 감동과 행복의 순간들이 내 핸드폰 안에 담겨 있었다. 내 아들의 사진, 그리고 내 아들의 동영상...   

  

아들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진첩 속 아들이 웃고 있으면 나도 같이 웃고, 사진첩 속 아들이 울고 있으면 그래도 나는 웃었다. 아들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다 내게 웃음을 안겨줬다. 그냥 다 좋았다. 그러니 세상사에 골치가 아파질 때 그것은 그야말로 명약이었고 명의였다.    

     

우리집에 사춘기 괴물이 나타난 이후 사진첩 속의 내 천사는 내게 더 큰 의미가 되었다. 웃음기를 싹 거둔 채 나에 대한 존경심이라고는 1도 없는 듯한 아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초승달 같은 눈웃음과 한쪽 볼에 움푹 패이는 보조개로 나를 들었다 놨다 했던 그때의 아들의 얼굴이 너무 그리워졌다.

지금 나를 마주하는 아들의 얼굴에는 웃음기와 존경심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그래서 서럽고 화나고 미워 죽겠지만... 그래서 스트레스와 실망과 분노에 부채질을 하고 있지만... 나와 눈만 마주쳐도 방긋방긋 웃어주었던 지나버린 과거를 떠올리며 그 마음을 어느 정도 희석할 수 있었다.  

    

그때의 너는 존재만으로도 그냥 모든 것이 좋았으니까.

지금은 마이너스이지만 그때는 플러스였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샘샘으로 치자.

나쁘지 않지?

그렇게 마인드콘트롤을 하면서 집으로 퇴근했던 것 같다.      

     

영아기 때는 아이가 건강만 하다면 다 괜찮다. 열 손가락, 열 발가락 온전히 갖고 태어나 준 것만 해도 감사하고 충분하다. 하지만 유아기 때부터는 슬슬 아이의 학습에 대해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 욕심은 학령기, 그러니까 초등학교 입학 이후부터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더 커진다. 그것은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이 거치는 보편적인 코스이다. 나도 그랬다. 아마 거의 대부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내 자신의 문제다. 나의 감정이고 나의 욕심이고 나의 소망이니까 내 마음을 콘트롤하면 얼마든지 그 수위를 조절해나갈 수가 있다. 하지만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그것이 완전히 달라진다. 정말 지독한 적을 마주해야 한다. 그 지독한 적은 오직 저밖에 몰라서 상대방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다. 게다가 순식간에 청개구리에 빙의되는지 공부를 해야지 하면 더 안 하려고 하고 뭔가를 도와 달라고 하면 못 들은 척한다. 그냥 엄마가 원치 않는 선택을 하려고 굳이 애쓰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데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으려고 하는 녀석이 자기 말을 하나라도 놓치면 과하게 원망하고 나무란다. 나를 원망하고 나무라는 말 안에는 칼이 들어 있어 내 마음을 마구잡이로 찌르고 헤집는다. 참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다.      


나는 이것이 그냥 사춘기 아이들의 특징인 줄 알았다. 주변에서도 워낙 사춘기 아이들의 유별난 점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전해들었던 터였다. 그래서 사춘기가 되면 아이가 갑자기 괴물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둔 터였다. 누구나 거치는 암흑기이기 때문에 다만 좀 요란스럽게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사춘기 괴물은 전혀 덜 요란스럽지 않았다. 덜 요란스러웠으면 했던 소망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얼른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망을 리셋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늦은 밤 몰래 아들 방으로 들어가 잠든 아들의 모습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러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제의 천사가 오늘이 괴물이 된다고? 그렇게 착하고 바르고 똘똘하고 사랑스러웠던 내 아들이? 그건 말이 안 됐다. 혹시 천사를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은 내 잘못된 말과 행동과 상호작용이 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의심을 품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서... 그러면서 알게 됐다. 사춘기가 된다고 무조건 반항 괴물, 게으름 괴물, 짜증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어른인 내가 더 큰마음으로 품으며 혼란스럽고 불안한 아이에게 확실한 나침반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들과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들은 다시 나를 보고 웃기 시작했고, 나에 대해 존경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엄마 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줘서 고마워요.”라는 말로 나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더 이상 우리집에 사춘기 괴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잔소리 마녀도 사라졌다. 아니다. 순서가 바뀌어야겠다. 잔소리 마녀가 사라지니 사춘기 괴물도 사라졌다.      


사춘기는 가장 파괴적인 시간이 아니었다. 에너지가 가장 많이 폭발하는, 그래서 가장 희망적이고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성숙한 부모가 어떻게 이끌어주느냐에 따라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달라진다.

그 시기를 극복했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지금부터 사춘기 괴물과 다시 관계를 회복한 잔소리 마녀의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한다. 갑자기 아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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