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J Min 민윤정 Jun 15. 2022

팀 내 호칭에 대하여


창씨개명도 아니고, 한국 이름이 있는데 굳이 어색한 영어 이름을 지어서 부르라는 건 체질적으로 싫다. 무엇보다도 한 명 당 하나의 이름을 기억하기도 힘든데 두 가지를 기억해서 매칭까지 해야 하다니!


짧은 MBA 유학 시절과 영어학원 강사에게 내 이름은 YJ(한국 이름의 firstname initial)라고 소개했었더랬다. 또 딸은 어려서 아예 한국 이름 + 영어 이름을 지어 주었더랬다. (결국 딸은 한국 이름을 선택했지만)


아무튼 많은 스타트업들이 영어 이름 또는 이름님이라고 서로를 부르게 하는 데는 아래의 기대가 있어서일 것이다.


-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감 없이 말하는 문화

- 협업 시 경직된 hierarchy 가 가져오는 부작용 방지


내 첫 직장은 작은 규모 스타트업에서 IPO를 한 대표적인 벤처기업이었다. 여기 기억을 되살려보면


처음에는 대표님이 창업자였는데 실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던 것 같다. 외부에 실장이라고 소개하셨고 큰 생각 없이 실장님, 다른 사람들은 **씨였다. 젊은 창업자팀이었기 때문에 이사님, 사장님, 대표님 등의 호칭에 창업자들부터 경기를 했었던 것 같다.

영업부서가 생기면서 나가서 무시당하면 안 된다고 부사장, 영업대표 등의 직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올드 멤버들 사이에 입에 잘 안 붙긴 했어도 여전히 내부에서는 **씨들이었고 이 즈음에 사내에서 만난 남편과 나는 여전히 **씨가 제일 편한 호칭이다.

조직이 커지고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조직문화라는 고민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인사위원회에서 **님으로 부르자는 정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손발이 오그라 드는 느낌이었지만 곧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 주는 뉘앙스가 다른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님이라고 불러도 존중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대표나 본부장을 **님이라고 불러도 그 사람의 의중은 뭘까? 이런 눈치보기와 추측이 난무했었더랬다.

그러다 내가 창업을 하고, 한국 이름이건 영어 이름이건 firstname만 부르게 운영했었는데 나름 괜찮았다. YJ, 철수, 영희, John 이런 식이 었다.

다시 조인했고 자문 중인 회사들은, 창업자의 의중을 따라서 운영 중인데, 한 곳은 **님, 다른 한 곳은 영어 이름 + 일부 직책명으로 부르고 있다. 뭐 이런 문제에서는 창업자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불려봤던 호칭들 중 직함으로 불려본 기억은 연구원, 선임 연구원, 개발자, 데이터 모델러, 팀장님, 본부장님, 이사님, 대표님, 실장님, CTO님, 고문님 등등이었지만. 여전히 내게 제일 편한 말은 "YJ", "윤정 님", "윤정 씨" 다.


일단 내 취향은

- 이름을 바꾸거나 새로 짓게 하는 건 반대.

- 익숙한 영어 이름 또는 한국 이름으로 부르는 건 찬성 : **님은 사실 여전히 손발이 오그라들긴 한다. 그래도 뭐 참을 만은 하다.

- 직함으로 부르는 건 불편하다. 왜냐하면 직함이라는 게 무의식적으로 직함을 직급처럼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직함*님과 *직함*만으로 부를 때를 생각해 보자. ** 대표님, **대표라는 말의 뉘앙스를 생각해 보라. 장유유서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무의식 중에 팩트나 인사이트나 지식이나 경험이나 데이터 기반이 아니라 위아래 직급으로 누르기형 의사결정, 지레 눈치보기형  의사결정이나 커뮤니케이션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 직함+님 호칭을 이용할 때도 있다. 우리 회사나 팀이 무시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자리에서다. IR이나 영업 시에는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나와 동행한 사람의 직함을 의도적으로 강조한다. "저희 대표님이 방금 설명드렸다시피...", "저의 영업대표님이 좀 전에 보여드린 슬라이드 7을 자세히 보시면..." 주로 영업이나 IR 같은 활동은 협상의 과정이기 쉬우므로 최대한 우리 팀 리더의 말의 무게를 증량하기 위해 쓰는 내 노하우다. 물론 요즈음의 나는 내부 협의 때는 당연히 이름+님이나 이름을 부르는 관계와 일하기는 하지만.

- 내가 신경 쓰는 호칭은 나보다 많이 어리거나 피투자사 임원이거나, 내가 구매하는 용역 제공사 임직원이거나 주니어이거나 피평가자 들이다. 내 존재 자체가 부담일 수 있고 혹시라도 내 눈치를 살피거나 필터 없는 yes맨을 양성하면 결국 나만 고집불통 바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창업가들 중 상당수가 본인도 체계적인 조직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거나 혹은 초기 리쿠르팅 파워가 강할 수가 없으므로 경험이 없거나 적은 멤버들을 채용해서 겪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 보고체계의 부재, 잘 안된 일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 내가 의사결정을 하고 외부 투자자 고객들에게 약속했던 일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는다.

- 밤새 IR 자료 만들고 영업하다 회사에 들어왔는데 멤버들이 우리 회사는 비전이 없네, 문화가 이상하네 투덜거리고만 있고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지 않다.

- 내가 다~ 마이크로 매니징 할 시간과 체력이 없다.


이럴 때, 달콤한 유혹이 계층 조직을 만들고 상명하달이 일사불란하게 되는 군대형 조직이나 생산라인 부품처럼 사람들을 관리하고 싶은 유혹이다. 뭐 이 방식이 꼭 나쁜 건 아니다. 외국인이라 이름을 불렀겠지만 스티브 잡스는 슈퍼 꼰대 마인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변화무쌍한 시장에서 사실 전쟁터나 다름없지만 소프트웨어를 근간으로 하는 사업이라면 난 군대식 상명하달 조직이 동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우선 똑똑하고 자존감 높은 사람들은 층층시하 계층구조의 하부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부터도 똑똑한지는 모르겠지만 자존감은 높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

- 빠르게 변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시장에서는 조직체계 자체도 유연해야 하고 직책 개념 또한 변화무쌍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 커리어상 큰 영감을 준 ted 강연 중 하나가 바로 아래이다.

###


위대한 시스템들은 수많은 trial & error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강연이다.


하지만 좀 더 직위 free 호칭을 선택했을 때 부작용을 방지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 보고라인과 의사결정권은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채용 시 보통 보고자 보고라인은 명확히 한다.

대신 내 노하우는 30명 언더일 때는 조직(팀)을 심플하게 가져간다. 잘못하면 부서 간 네가 잘했네 못했네 등 silo 가 너무 일찍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는 직속 보고자가 명확하고 1-2 depth 가 대다수이다.

- 자존감 높은 사람들을 뽑는다. 호칭이 뭐건 그런 사람들은 잘 적응한다.

- 데이터 기반, 팩트 기반 의사결정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