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양득우(亡羊得牛)

수채화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지를 뻔

by 정이안





"어미야! 우리 준이가 없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은행에서 뛰어나 와 택시를 잡았다. 머릿속은 아이가 없어졌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다음 날로 미룰 수 없는 업무가 있었지만, 일은 뒷전이었다.


아들이 유치원에서 친구랑 놀다가 사라졌다. 놀이터에 가보았지만 뛰어노는 것은 바람뿐이었다. 어머님과 이웃집 아주머니까지 합세해서 "준아, 준 아!"라고 골목이 떠나가도록 외치고 다녔다. 동네를 이 잡듯 뒤졌지만, 아이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산등성에 걸렸던 노을이 검은 구름 사이로 숨으려 들 때였다. 그때의 내 마음은 마치 산속에서 어미 노루가 새끼를 잃고 찾아 헤매다가 울부짖는 심정이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식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온 세상이 암흑천지로 변했다. 아이는 집을 잃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것 같았다. 유괴범 손에 이끌려 낯선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꺽꺽거리던 울음이 통곡이 되었다.


아버님의 문고리는 "준아!"였다. 주말이면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어귀부 터 손주 이름을 불렀다.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손주를 안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시골 학교 사택에서 생활하던 아버님은 일주일 동안 쌓아두었던 시름을 한꺼번에 내려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은 손이 귀한 집안의 종손이다. 집안의 맥이 계속 외동을 통해 이어졌고, 시할아 버님 대에 와서 외동을 면했다고 아버님께서 일러주셨다. 중시조 사계 김 장생 할아버지 가문의 대가 끊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선조는 말할 것도 없고 당장 아버님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생각의 꼬리를

쫓다 보니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만 주변을 맴돌았다.


아이를 찾기 전에는 집으로 못 들어갈 것 같았다. 절망감에 빠져 터덕거 리며 걷고 있었다. 어디선가 환청처럼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넋이 나갔던 참이라 귀를 의심했다. 발걸음을 멈췄다. 남편이 등을 툭 치며 "준이 찾았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아들이 내 손을 잡으며 "엄마, 잘못했어요 내일부터 집에서 놀게요"라며 안도의 울음을 터트렸다.


아들은 나의 손을 꼭 잡고 울먹이며 찬찬히 일렀다. 유치원 친구들이 엄마와 손잡고 집으로 가는 것을 보고 부러워서 눈물이 났고, 눈물을 보이면 할머니가 속상해하시니까 울음을 그치려고 놀이터에서 놀았다. 엄마가 올 시간이라 급하게 집으로 가다가 골목을 잘못 들었다. 아들이 길을 잃은 이유를 울먹이며 말하자, 내 가슴엔 안타까운 마음으로 북받쳐 올랐다. 자식에게는 엄마가 전부가 아닌가. 나는 직장만 고집한 것 같아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더 망설이다가는 큰일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재간이 없었다. 아들의 양육과 직장을 놓고 남편은 물론 아버님까지 합세해 실랑이를 벌였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는 이상 내 삶의 결정권자는 내가 아니었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아버님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칠 방도가 없었다. 손자가 할머니 손을 잡고 교정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당신의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아버님의 마음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자식은 엄마가 키워야 한다'라는 명제를 거역할 수 없었다.


아들은 수시로 나에게 은행 가지 말라고 떼를 썼다. 매번 잘 다녀오라고 고사리손을 흔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출근 채비를 할 때는 으레 치마꼬리가 늘어졌다. 아들은 할머니 말씀 잘 들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키고, 자신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식의 이런 모습을 보고 출근하는 나 역시 종일 허둥거렸다.


직장 상사와 동료들이 만류했지만, 사표를 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 는 문구가 나에게 이르는 말처럼 여겨졌다. 가정을 지탱하는 엄마의 울타 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들이 깨우쳐 주었다. 자식에게는 엄마 손이 꼭 필 요할 때가 있고, 나는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를 택해야 했다. 고집이 자칫 삶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업주부가 된 후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표정이 바뀌고 웃음이 늘었다. 하지만 내 속에는 상실감만 쌓여갔다. 직장에 다닐 때는 항상 새로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업무를 처리할 때마다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하루하루 계단을 오르며 정상을 향해가는 것 또한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그러나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듯한 집안일에는 목표가 없었고 해 봐야 생기도 나지 않았다. 눈동자에 맥이 빠지고 입속에 넣은 밥알이 모래알처럼 여겨졌다. 살림살이조차 눈 밖에서 겉돌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들은 철이 들면서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엄마가 자신 때문에 은행을 그만둔 것은 잘한 것이 아니라고, 강산이 여러 번 바뀌고 아들의 나이는 당시 내 나이가 되었다. 남편은 지금과는 다른 시대상 때문에 내가 퇴직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아들은 아쉽다며 혀를 찬다. 그 당시 사회에서는 여자가 결혼과 동시에 사표를 쓰고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가정으로 들어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요즈음 가정 살림은 맞벌이를 해도 여유롭지 않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는 내 처사를 안타까워하는 것은 당연할 게다.


직장에 머물기 위해 식구들의 의견을 무시했더라면, 지금 존재하는 가족의 울타리는 없었으리라. 서로 아끼고 품어주는 가정도 상상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글을 쓰면서 작가의 꿈을 키우기는커녕 싹도 틔우지 못했을 것이다. 자칫 잘 그린 수채화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질렀을 것 같다. 전업주부가 된 뒤로 한동안 힘들었던 이유는 앞날을 몰라 손에서 놓은 것만 커 보였기 때문일 게다.


품에 안은 양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쳤다. 다니고 있는 직장이 소처럼 크게 여겨졌다. 아들을 잃고 찾으면서 나에게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았으면 키우는 것 또한 내 몫이라는 것을 깨우쳤다. 직장을 고집했더라면 망양득우(亡羊得牛)할 기회를 놓쳤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