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을 피우며

삶, 죽음을 해산하기 위한 회임 기간일지도

by 정이안

소금꽃을 피우며




발걸음에 긴장이 가득하다. 간호사들의 손에 이끌려 침상을 오가는 기기들도 숨이 차다. 심 폐소생술을 하는 손놀림 또한 예사롭지 않다. 출렁이던 모니터의 실선이 수직으로 주저앉으며 가늘게 들리던 기계음조차 멈춘다.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 손풍구를 돌리던 의사들의 어깨에 맥이 빠진다. 구급차에 실려 온 남자가 이승의 한을 허공에 남긴 채 자연으로 희귀하는 모습이다. 한 생명을 이토록 동동걸음을 치게한 이유가 무엇일까.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삼십여 년 전 장간막임파선염으로 장막을 걷어내느라 4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 그 후 뇌경색, 간 경화증까지 내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 갔다. 응급실 졸입이 잦다 보니 일상은 점차 무기력해지고, 살아야 하는 의미조차 퇴색하기 시작했다. 가족의 걱정이나 위로의 말조차 분노의 쇠사슬처럼 여겨졌다. 급기야 남편 차에 돌을 던지는 위협 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대학병원에서 갱년기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라며 입원 치료를 권했다.


종갓집 맏며느리, 아내, 두 아이의 엄마 역할로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조그만 공장을 운영 하던 나의 손발은 쉴 틈 없이 바빴다. 원단 재단부터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전천후로 움직였다. 심지어 기계는 물론 전기콘덴서가 말썽을 부려도 내 손이 가야 했다. 경황없이 사는 바람에 병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 그사이 깊어진 병은 나를 낭떠러지로 내몰았다.


스물네 시간 깨어있는 뇌는 잠 들 틈을 주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베란다에서 이십여 미터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날으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출근한 남편에 게 문자를 보냈다. '의미 없는 삶으로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아이들 잘 부탁한다'라는 요지의 글을 띄우고 침대 위에 반듯이 누웠다. 조용히 떠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발을 내딛는 순간, 새털같이 가벼워진 몸이 살포시 내려앉으며 느낄 쾌감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남편은 사색이 되어 현관문을 부서질 듯 밀치고 들어왔다. 뒤이어 아들과 딸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이닥쳤다. 침대 위의 나를 보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 섞인 핀잔으로 달랬다. "당신이 없는 우리 집은 상상할 수 없어, 나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당신은 꼭 필요한 사람 이야"라며 다독였다. 어떤 말도 귀 밖에서 맴돌았다. 멈칫했던 우울증은 갱년기와 보태져 소실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의학의 힘을 빌려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가족들이 쳐다보고 있있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낭떠러지에 매달려 발버둥치던 내가 가족의 울타리를 잡고서야, 버팀목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해 겨울날, 정상급 여배우의 비보가 들려왔다. 그녀는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우울한 마음에 습관적으로 수면제를 먹었다. 그로 인해 병은 깊어지고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듬해 여배우의 남편과 남동생도 덩달아 상실의 고통과 포개진 병마에 쫓기다. 결국 순리를 저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이 비난과 시기 질투의 시선 속으로 수장되는 것을 겪었으리라. 군중 속에서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선택한 결과가 아닐까.


연이은 비극적 마감의 원인이 내가 앓은 병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숨어있던 마음의 감기가 되살아나는 듯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원인과 결과 또한 다르지만, 그들이 헤어나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눈에 어린다. 우울증은 감기같이 가볍게 찾아와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잉태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죽음을 해산하기 위한 회임 기 간일지도 모른다. 삶과 더불어 사는 죽음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 하는 것 같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이 생각난다. 짧은 시간을 살면서 남들이 그어 높은 잣대에 맞추어 울고 웃으며 사는 것일 게다. 혹시 그 눈금이 내 안의 소리를 가리는 소음은 아닐까, 내 생각의 주머니에 용기를 불어넣는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좌절하지 말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남이 그어놓은 선을 지우고 나니 세상이 밝아졌다. 소심하고 낯가림이 심해 이웃과 마주쳐도 묵례로 그쳤던 내가 먼저 다정한 말을 건네며 다가간다. 헬스장에서 흐르는 음악에 맞춰 걷기와 스트레칭으로 신체 근육도 만든다. 좌절되었던 문학소녀의 꿈도 깨운다. 갇혀있던 내 안의 소리를 문자에 담아 쏟아낸다. 작가가 될 것이라는 꿈이 싹트기 시작한다. 목표가 생기니 무료할 틈이 없다. 생각을 바꾸니 습관이 달라지고, 습관을 바꾸니 인생이 밝아진다. 앓고 있던 우울증이 자리하던 곳에 마음의 근육이 들어선다.


생의 레이스에서 벗어나지 않고 결승점에 이르러 소금꽃을 피우고 싶다. 전 구간을 완주한 마라토너의 등에 땀방율이 쌓이고 쌓여 핀 소금꽃이 빛을 발하지 않던가, 후회 없는 오늘을 살다 보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살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을 말 기에 마음을 다잡는다.


세상의 미물들이라고 고통이 없겠는가,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저버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우리는 죽음이 있어서 절제된 삶을 살고, 원하는 일을 하며 보림찬 하루를 살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탐스러운 소금꽃을 피우기 위해 옷고름을 여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