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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티끌

광복 80주년 국립중앙박물관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기

by 야미



사유의 방에서, 내 삶을 마주하다

광복절을 앞둔 평일 오전,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방학이라 그런지 평일인데도 아이들과 함께 온 사람이 많았다.


10년 전 이곳에 왔던 기억이 떠올랐고, 이번엔 ‘사유의 방’에 꼭 머물러보고 싶었다. 유퀴즈를 통해 알게 됐고 반가사유상이 없어서 못 판다고 계속 노출되면서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평일 오전이니 고요하게 감상할 수 있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붐벼서 아쉬웠다 그래도 조용히 눈에 담았다. 부처의 미소, 그 평온한 얼굴을.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비슷한 듯 달랐다. 온화한 표정도 조금씩 달랐고 디테일도 달랐다. 한 바퀴 돌면서 천천히 둘러본 모습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나보다 더 오래 존재해 왔고 앞으로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존재할 것이며 앞으로의 후손들에게도 쭉 보존되어 보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괜히 뭉클해졌다.


비록 종교가 없는 나지만, 마음이 흔들릴 때면 항상 불교에 마음이 가곤 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스님의 말씀을 유튜브를 통해 듣거나 , “돈오점수” 와 같은 철학적인? 좋은 표현들과 위로되는 글을 많이 찾아다녔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마음이 더 가는 건 어떤 이유일까 궁금해졌는데 부처는 다른 신처럼 멀리 있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과 닮은 모습’이라서일까. 눈에 계속 보여서 그런가?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계속 온화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어쩌면 그 안에서 평범한 일반 사람이 비쳐 보이는 듯했다.



왜 기증했을까? 기증방에서

기증관에서 예상보다 꽤 많은 시간을 머물렀다. 그리고전시장 한편, 조선 시대의 유물들이 눈에 머물렀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본 것 같은 그릇, 자개장, 낯익은 자수 그 기증품들을 바라보며 문득 들었던 생각.


“왜 그들은 이것을 기증했을까?” 자신이 수십 년에 걸쳐 수집한 이 물건들이 이토록 고요한 공간에서 누군가의 눈에 한 번 더 담기길 바랐던 걸까. 그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기증방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수집도 대단한 일이지만 기증은 더 대단한 일이다. 기꺼이 자신이 아끼던 걸 남들을 위해 세상에 내어주는 용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인 곳이 국립중앙박물관의 기증관이었다.


사실 눈에 익숙한 물건들이 나의 아주 어릴 적 할머니 집에 가면 볼 수 있는 것들이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고, 옛날감성의 카페를 간다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엔 흔했지만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것들 그런 것들이 더욱더 특별해 보이고 빛나는 것 같다. 그 당시 흔했던 거지만 지금 와서 다시 봤을 때 더더욱 아름다운 물건들.



어릴 적 할머니댁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롱의 문양인 자개무늬, 그리고 여기선 자개무늬 바둑판을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흔했던 것 (물론 구하기 어렵고 귀한 것들 이였겠지만) 지금의 흔한 물건들도 나중에 또 더 귀해지는 날이 올까? 그때의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이 스쳐갔다.



광복의 얼굴들

독립운동가들의 실물 크기 인형이 전시된 공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유관순 열사의 크기였다. 어린이들이 줄을 서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열사들의 키가 지금의 초등학생처럼 작은 키와 비슷하거나 더 작은 걸 보고 저 작은 체구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그리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걸 적는데 또 눈물이 핑 돈다..


그 시절,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삶을 던졌다. 그 희망의 끝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감사하다.



또 한 번 눈물이 핑 돌았던.. 글. 어릴 때는 전시품 자체에 눈이 많이 갔다면 이곳에서는 글에 더 마음이 많이 갔다. 대부분이 그들이 당시 희망했던, 간절히 원했던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인용문이라서 더 그런 것같다.


우리는 지금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그게 내가 더 어릴 적만 해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휴대폰의 발전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이어져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고 그곳에서 많이전달되고 공유되는 것이 문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케이팝을 예시로 들 수도 있다. 난 케이팝 그 자체보다는 그 케이팝 가수들이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을 대표하는 엠버서더 역할을 하고 있고 그들의 노력이 이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한다.



이번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BTS를 통해 더 알려진 것과 넷플릭스에 영화 애니메션 [케이팝데몬헌터스]를 통해 알려진 한국문화의 많은 요소들이 (까치와 호랑이김흥도 민화를 따서 만든 파란 호랑이 캐릭터, 그 배지가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널리 알려지고 그들이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게 그리고 내가 그런 시대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한때 나는 국사에 관심도 없었고 상해 놀러 가서 임시정부 갔을 때도 크게 감흥이 없었는데 한능검시험을 준비한 후부터는 많이 변화했다. 삶이 팍팍하고 내 목표만을 위해 달렸던 여유 없던 나에게 그러한 역사나 내 목표 이외의 것들은 눈에 들여놓을 생각조차 못했던 것같다. 이제야 조금씩 주변에 눈을 돌려보고 관심을 가지고 ,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나의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척화비와 동학 서명문

책에서만 보았던 ‘척화비’ 시험 공부하던 그 시절에는 그냥 외우기 바빴던 단어였다. 하지만 이제, 그 앞에 서보니 다르다. 그 시대의 공기와, 사람들의 선택이 느껴졌다. 동학농민운동의 서명문을 보며 그 서명문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들이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저 글을 적었을지 상상라게 돼서 또 한 번 뭉클했다.



어릴 적에 어른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이름 손기정 마라톤 선수의 이야기 광복 80주년이라고 광복에 대한 이야기가 더더욱 맘을 이끌었는데 처음에 베를린에서 우리나라 태극기를 가슴에 달지 못했고 ”난 일본인 아니고 한국인입니다 “라고 계속 설명했어야 했다는 그 글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뒤 다른 선수들이 국기를 달고 참여하고 상을 탔을 때 그 가슴에 달린 태극기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는 글.


그들이 품었던 마음이 책에서 글로만 읽었을 때보다 훨씬 뚜렷하게 다가왔다. 역사는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직접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전시를 보며

부모님의 나이에 그 시대를 살다 떠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내 나이쯤에 세상을 떠나기도 했던 이름들

인생은 정말 짧다. 그래서 더 간절해진다. 내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내일이 오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확실을 가지지 못하고 이리저리 많이 흔들리고 있다. 이 방향이 맞는가 계속 고민하고 재정비를 한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공간이였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 번쯤 방문해 보시길 모두에게 추천한다.


곧 다가올 광복절 기념으로 보고 싶었던 영화[하얼빈]를 이번 주말에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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